생각의 차이
생각의 차이
  • 신금철<수필가>
  • 승인 2016.11.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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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한계령에는 어느새 고운 단풍이 사라지고 마른 옷을 입은 핏기 잃은 잎들이 겨울을 맞고 있었다. 뉴스에서 대관령에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었다는 보도에 만경대의 아름다움을 못 보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만경대는 설악산의 최고 봉우리로 만 가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 3월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출입이 통제되어 46년 동안 모습이 감춰져 있었다. 금년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46일 동안에만 개방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차를 몰았다.

한계령의 마른 잎과는 달리 선녀탕을 지나 용소폭포에 이르는 단풍의 숲은 환상적이었다. 나는 손으로 떠서 마셔도 될 것 같은 맑고 깨끗한 물, 산을 떠받친 장대한 바위,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의 수채화에 슬그머니 나를 예쁘게 그려 넣었다.

만경대 입장문을 들어서니 전날 내린 비로 축축한 좁은 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즐비하다. 휘어진 나뭇가지는 46년 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온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두루 살피며 그들과 반가움을 교감하고 싶었으나 앞사람과 바짝 좁혀진 좁은 길을 따라가느라 눈인사로 대신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니 정상까지 500m의 가파른 지점에 닿았다. 그곳부터는 계속 오르막이라 숨을 헐떡이며 서너 번을 나무에 기대어 쉬었다. 남편은 대형 카메라를 두 대나 짊어져 더욱 힘들어 보여 나를 안타깝게 했지만 나도, 남편도 만경대의 기대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만경대에 이르렀을 때 거대한 바위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경대 앞에 선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지고 여기저기 사진기의 셔터 소리와 휴대폰들을 든 손들이 바삐 움직였다. 그들 틈에 끼어 포즈를 취하고 남편의 카메라에 나를 담았다. 남편이 작품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자연이 창조한 걸작 앞에서 한없이 낮아졌다. 46년 동안 침묵 속에서 인내하며 설악을 품어준 그가 위대해보였다. 자연이 이루어낸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에 흠뻑 빠져들었다.

만경대의 모습에 취해 나처럼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겨우 이까짓 것을 보려고 힘들게 올라왔는가'라는 등산객들의 볼멘소리가 언짢게 들렸다. 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감사함을 모르고 만경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감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라 생각하였다. 왠지 46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만경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경대는 내년에도 개방할 것인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한다. 만경대를 뒤로하고 다시 오색약수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심해 쉽지 않았다.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만경대를 본 소감을 나누었다. 이야기 끝에 `볼 것도 없는 곳을 올라오느라 고생만 했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했더니 누구나 생각의 차이는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남편은 나보다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편협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머쓱했다.

사람마다 얼굴 모습이 다르듯 생각과 감정이 다르다. 젊은 시절, 남편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나는 논리적으로 따지는 버릇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 생각, 내 판단이 옳은 것 같아 고집을 세워 남편을 힘들게 했다. 내 생각의 기준으로 아이들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일이 많았다. 아마도 나의 이런 고집은 이웃과 친구들에게도 작용하여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만경대를 보고 느낀 감정과 생각이 모두 나와 같을 거라는 생각이 옳지 못하듯 다른 이의 생각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버릇을 고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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