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서 활로찾는 가련한 대통령
탄핵서 활로찾는 가련한 대통령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11.20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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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대통령과 청와대, 친박 의원들의 반격은 제법 호기로워 보였다. 그러나 이면에 숨겨진 구차한 계산을 읽지 못할 국민은 없을 것 같다. 머리를 숙이는 `사과' 모드로는 반전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모양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추문들이 터져나오니 민심이 저절로 잦아들 가능성도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얼굴에 철판을 까는 일이다. 좋게 말하면 정면돌파요, 정확하게 말하면 `배째라' 작전이다. 국면전환을 위한 정교한 전략이 엿보인다고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명줄을 유지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대통령은 “모든 것은 내 책임이고, 성실하게 검찰 수사도 받겠다”고 한 조급한 발언을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내 책임이요 하면서 검찰에 나가 수사를 제대로 받았다가는 경을 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의에서 시작했는데 중간에서 최순실이 분탕질을 했다는 변명도, 검찰 수사를 받은 측근들 대부분이 대통령의 지시와 개입을 실토한 마당에서 먹힐리 없게 됐다. 무엇보다 특검이 시작되면 간당간당하는 권력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지도 모를 `세월호 7일'이 파헤쳐질 공산이 높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방향을 180도 튼 `역주행' 아니었을까.

우선 대통령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이 급했을 터이다. 아직 살아있다는 시그널을 보내야 했다. 검찰이 대통령의 대면조사가 불가피하고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경스러운 발설을 일삼은데다 촛불시위를 선제적으로 단도리해야 할 경찰의 태도도 전과 달리 물렁해졌기 때문이다. 촛불에 주눅이 든 이들이 하이에나로 돌변해 주인을 물어뜯기 전에 건재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검찰조사는 거부하고 논란이 컸던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밀어붙였다. `바람앞에 촛불', `침묵하는 다수', `마녀사냥' 등 성난 민심에 기름 끼얹는 도발적 발언도 동시다발로 터트렸다. 열받은 야당과 촛불이 이성을 잃고 자충수를 둔다면 보수를 재결집해 진영싸움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구질구질한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19일 촛불시위는 외신도 감탄할 정도로 평화적으로 진행됐고, 다음날 검찰은 `대통령이 최순실·안종범의 공범'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기소가 마땅하나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 불소추 특권때문에 법정에 세우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표한데 그치지않고 앞으로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래도 대통령은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야당이 몹시 두려워하는, 그러나 꺼내들 수밖에 없는 유일한 카드인 탄핵을 조만간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퇴진압력 없이 반전의 찬스를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을 합법적으로 벌 수 있다. 두달은 기본이고 운이 좋으면 서너달도 가능하다. 등을 돌린 비박들을 잘 구슬르면 국회 통과부터 저지할 수 있다. 설령 국회서 탄핵이 의결된다 해도 보수색이 강한 헌법재판소가 있다. 임기가 끝나가는 재판관도 2명이나 된다. 대통령 탄핵은 헌재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대통령이 후임 재판관 임명절차를 거부하면 헌재는 재판관이 7명인 상태에서 탄핵안을 표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도 6명이 찬성해야 하는 룰은 변함이 없다. 바꿔 말해 재판관 2명만 반대하면 탄핵은 불발된다. 청와대가 희망을 놓지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가당찮은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날 공산이 높다. 대통령은 검찰이 공식 입건한 피의자가 됐다. 그것도 도적떼나 다름없는 말종들과 공모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남용하고 헌법을 유린한 혐의다. 이젠 자신이 농단한 헌법을 방패 삼아 권력을 연명하려고 한다. 명색이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의 시스템이 이런 지도자를 용납할 리 없다.

광화문으로 나간 야당을 향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30년 전의 거리정치, 시위정치로 퇴보하려 한다”고 소리쳤다. 딱 30년전 이 땅에서는 지긋지긋한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회복한 `6.29선언'이 탄생했다. 이 대표는 자신을 `근본없는' 사람으로 불렀다. 지연·혈연·학연 등에서 내세울 게 없는 아웃사이더 였음을 강조한 말이다. `호남이 쓰레기통에 버린' 자신을 대통령이 주워다 사람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은 지금 그가 구태로 몰아붙이고 있는 30년전 거리에 나섰던 100만 민중의 함성이었다. 집권세력이 좌지우지하는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가 종식되지 않았다면 `근본없는' 그의 현재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외침에 계엄령까지 만지작거렸던 전두환씨가 당시 어떤 선택을 해서 법적으로나마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 신분을 유지하게 됐는지 누구보다 대통령이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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