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이 52에게
48이 52에게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6.11.1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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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박순실(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전 국민이 공황 상태다. 건국 이래 가장 추악하고 가증스러운 권력형 비리이며 국정이 무당에게 휘둘린 치욕스러운 사건이다. 연일 쏟아지는 의혹과 새로 드러나는 사실에 망연자실하며 티브이 뉴스에 시선을 빼앗긴다. 한동안 무기력과 자괴감에 빠져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내가 무당이 통치하는 나라의 국민이었으며 대통령이 했던 말들이 무당의 점괘를 받아 적은 주술적 언어였다는 걸 생각하면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다. 제사와 정치가 한데 섞인 제정일치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SNS에 박순실 게이트에 대한 글을 올렸더니 나이가 지긋한 어떤 분이 정치 얘기는 하지 마라며 제동을 걸었다. 어이가 없었다. 인간이 본래 정치적인 동물인 것은 차치하고 정치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 자기가 선택한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는 것은 다른 형태의 정치 행위이며 동시에 정치 탄압이다. 나의 정치 행위는 당연하지만 너의 그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편협한 태도다. 미안하지만 나는 다른 이의 정치 취향이나 기분을 고려해 내 입에서 쏟아지는 분노를 틀어막을 생각이 없다.

52 대 48.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다른 후보의 득표율이다.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심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52프로에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박정희의 친일 행적과 패악을 알면서도 그 딸에게 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인가.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에 박정희가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게 표를 준 이유 전부인가. 밥만 먹여주면 대통령이 일본군 장교의 딸이든 독재자의 딸이든 평생 공주로만 살았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인지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통계를 보니 52프로 중 상당수가 5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노인들은 SNS와 인터넷 뉴스 등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 사회 문제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에 비해 분별력과 판단력도 맑지 못하다. 앞으로 몇 년, 길어야 이삼십 년을 살 노인들이 오륙십 년을 더 살아야 할 젊은이들의 세상을 마음대로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정작 박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짜증나니까 정치 얘기는 하지 마라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절망의 시대에 빠진 48프로들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현 사태의 일차 책임은 자기 철학이 없고 기본 소양이 부족한 대통령에게 있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도 국민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일본군 장교 출신 독재자의 딸에게 권력을 내준 무기력한 야당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통령을 치켜세우기에 바빴던 종편 채널과 언론이기를 포기한 공영방송, 사법 정의를 내팽개친 검찰과 법원, 박순실에게 뇌물을 바친 재벌도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필자를 포함해 대한민국 모두가 현 사태에 책임이 있지만 미안해하기는커녕 서로에 대한 비난만 무성하다.

지난 주말 민중 봉기의 촛불이 전국에서 타올랐다.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꺼지지 않을 태세다. 그것은 단순한 집회가 아니었다. 52프로가 초래한 국정농단에 맞서 48프로가 벌이는 항거의 축제였다. 민중이 박순실 게이트만 조롱하고 규탄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린 너무 뻔뻔한 어른들이다.

그 민중들을 거리로 등 떠민 것은 4년 전의 52프로였다. 우리의 투표는 정당했으나 옳지는 않았다. 대선 당시 박근혜가 훌륭한 대통령이 될 거라 장담했던 늙은 시인 김지하는 국민의 눈과 귀를 홀린 또 다른 무당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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