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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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11.1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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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Moo Hyun, 2016)'가 시작되기 5분 전에도 극장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한물간 사람에 불과한 것일까? 불안감 비슷한 감정이 살짝 찾아들기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객석에 군데군데 사람들의 눈빛이 반딧불처럼 켜지더군요.

영화의 영어 제목에서 `moo'라는 단어를 따로 떼놓고 잠깐 다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소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가 되니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널리 알려진 말의 무소도 떠오르고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도 있음을 쉽게 지나칠 순 없었죠.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다룬 두 명의 `무현'가운데 한 사람인 백무현이 그렸던 만화의 제목이 `바보, 노무현'이기도 하군요.

그 사람이 바보 맞긴 하죠. 돌팔매질을 당할 수도 있는 온갖 위험과 모략이 도사리고 있는 광장(廣場)으로 나갔으니까요. 뜻을 같이하는 몇몇 사람들과 밀실(密室)에 모여 세상을 논하거나 주물럭거리는 협잡꾼으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길을 선택하진 않았으니까요.

영화가 준 가르침을 몇 가지만 되짚고 넘어갈게요.

1.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남 앞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가야 될 역사라면 제가 아니더라도”라는 양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2. 큰 뜻보다 작은 감정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비록 큰 뜻을 이루지 못하게 돼도 “스스로를 위로하라”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3. 힘 있고 이득이 생길 만한 상대에게만 고개를 조아리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의 집 주방에서 일하는 고무장갑 낀 젖은 손조차도 성큼 잡아주면서 마음을 다해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4. 정치를 하면서 잘못된 처방전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묘약(妙藥)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직언을 해 주는 사람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5. 정치인으로서 철새처럼 자기가 있을 자리만 기웃거리고 사리사욕에 눈이 먼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치인은 모름지기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그것과 연결된 동기를 갖게 해 주어야 한다”라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한 사람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6. 먹고살기에 급급한 삶의 형편만 해결해도 된다고 설레발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루하루가 신명나는 삶”을 선물로 주고 싶다던 사람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오던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의 가사 마지막 부분이 가슴 속을 막 헤집고 들어왔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그런 의미가 있죠/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영화가 끝난 뒤에도 뜨거운 핏줄기를 통해 커다란 물음이 생생하게 들려왔습니다. “부패한 권력에 당당히 맞서고 있는가?”, “비겁하지 않은가?”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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