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땅이 되어 주는 삶
서로의 땅이 되어 주는 삶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6.11.17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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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백인혁

올해 가을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가 자주 내려서 가을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가온 추위에 세상 만물이 다 움츠러드는 어느 날 첫 서리가 온다고 텃밭에서 얼마 자라지 못한 조그마한 호박들을 따다 맛있는 국을 끓여 주신 공양주 할머니의 따스하고 정성스런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할머니 말씀이 여름에는 비가 자주 내리지 않아 호박이 별로 안 열리더니 가을비에 제법 많이 열렸는가 싶었는데 날이 추워져서 다 따다가 국을 끓였다는 것입니다.

호박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갑니다. 토양의 상태와 기후의 상황을 따라 결실의 차이가 있게 됩니다. 만일 땅을 만나지 못하면 호박은 살지도 결실을 맺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식물들은 땅을 만나야 삶이 영위됩니다. 아무리 좋은 식물이라도 땅이 없거나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다가 뿌리를 내리고 살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호박이 땅이나 물이 없으면 안 되듯 `나는 무엇이 없으면 안 될까?' 하는 의문에 답을 얻으면 사람이 어디다가 뿌리를 내리고 사는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공기가 없거나 물이 없거나 땅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모님이 안 계셨어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주위 많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도와주고 지켜주고 가르쳐 주어 살 수가 있지요. 그중에는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유명인도 법조인도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공무원 등등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 모두가 다 없었다면 살 수 없을 관계라고 보면 하늘과 땅 사람 등등 그 모두에게 우리는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더 명확해 지는 것은 우리 인간사회의 관계는 서로 서로가 뿌리를 내리도록 땅이 되어주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떠나거나 하늘과 땅을 떠나면 뿌리 내릴 곳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식물이 뿌리 내리지 못하면 죽어 가듯이 사람도 뿌리를 못 내리면 죽겠지요. 그렇기에 사람은 천지나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관계인데 나만 살겠다고, 상대방이 있어 내가 못산다고 상대방을 짓밟고 빼앗고 죽이지 못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모두가 사는 그 모습이 아마 많은 사람이 다 원하는 모습일 것이고 많은 종교인이 추구하는 천당이나 극락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는 존재입니다. 기적은 다 인간이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모두가 서로 서로에게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땅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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