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옛날 옛날에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6.11.1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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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화 속의 인물이나 동물들처럼, 성실하게 노력하고,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아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동화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도 제기하지 않는 아주 `착한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하다니, 토끼가 바다 속 왕궁으로 들어가 간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나올 수 있었다니. 물론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으로 본다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일 터이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다. 얼마 전 아이들과 수업 내용 중에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가 있었다. 한아이가, 토끼와 거북의 경주는 부당하다고 했다. 기준점이 같아야 하는데, 토끼는 달리기를 잘하지만 거북은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아이가, 그러면 경주를 하는 과정과 종목을 달리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경기종목을 달리기뿐만 아니라 강이나 냇가에서 헤엄을 쳐서 건너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토론이 재미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냐고 칭찬을 해 주었더니 그 아이는 자신도 얼마 전 동화를 본 것이 생각난 것뿐이란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어 올바른 인성을 지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때문에 과거의 어른들은 동화를 읽고 그것을 지침 삼아 아이가 올바른 삶을 살기 바랐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화 속의 인물이나 동물들처럼, 성실하게 노력하고,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아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믿었다. 흥부가 형인 놀부의 심술에도 참고 견딘 끝에 금은보화를 얻고 부자가 된 것처럼 그 시절 대부분 아이들은 그렇게 동화의 이상한 세계를 의심하지 않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착한 사람은 왜 주위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가'의 저자 소노 아야코는 자신이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스스로 선의를 갖고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착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빠져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착한사람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착한사람 콤플렉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뿐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다. 자신이 착하다고 믿는 사람 중 진정으로 착한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의 큰 혼란도 어쩌면 이러한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쓴 지도자 때문은 아닐까. 적어도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라면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바탕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착한 행동을 하는 `착한사람 콤플렉스'를 지닌 지도자는 국민을 힘들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가치관 또한 시대에 맞춰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대 세상의 가치관은 적어도 착하게, 성실한 노력만이 최고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열린 사고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사고를(착하지 않은 사고) 지닌 동화 작가가 많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있을 수도 없는 일'의 동화를 `있을 법한'이야기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그것은 요즘 일어나고 있는 `있을 수 없는'동화 같은 세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작은 발걸음의 시작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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