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을 생각하며
안영을 생각하며
  • 박경일<명리학연구가>
  • 승인 2016.11.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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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로 보는 세상이야기
▲ 박경일

사마천이 저술한 역사서 `사기'는 중국 황제(黃帝)시대에서 전한(前漢) 무제때 까지의 2500년 역사를 기술한 최초의 기전체(紀傳體) 역사서다. 일기를 쓰듯 연대순으로 기록한 편년체와 달리 기전체란 통치자를 중심으로 여기에 속한 신하들의 전기, 통치제도, 문물 등을 종합적으로 분류 및 서술하여 왕조 전체의 체제를 이해하기에 편하도록 쉽고 생동감 있게 재현한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사마천의 `사기'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을 꼽으라면 역시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재상 안영(晏 )이다.

공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으며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볍다'고 역설한 맹자의 귀민경군(貴民輕君)을 먼저 행동으로 보여준 명재상이다. `사기'라는 방대한 역사서를 저술한 사마천이 숱한 인물들의 삶을 기술하며 오직 안영을 지극히 존경했는데 `안자(안영의 존칭)께서 살아오신다면 난 그분의 마부가 되어 채찍을 휘둘러도 좋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바로 그 명재상 안영의 이야기 중에 몇 개를 적으려한다.

어느 날 왕이 꿈속에서 혜성을 보고 불길하게 생각하여, 재상 안영을 불러 물어보았다. “과인이 듣기로 혜성이 나타나면 반드시 어느 나라인가는 망한다고 하던데, 어젯밤 꿈속에서 과인이 혜성을 보았습니다. 내 점몽하는 자를 불러 이를 점쳐 보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그러자 안영이 말하였다. “임금께서 평소 절제가 없고, 바른 말을 듣지 않고, 끝없이 일을 벌이며, 세금을 한없이 거두어들이고, 백성을 부리되 더 이상 못 부려먹어 안달을 내는 듯이 하고 있으니, 백성의 원한으로 이미 나라가 위태로울 지경인데 어찌 유성 하나로 이렇듯 법석을 떠십니까?”

또 어느 날 왕이 안영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림에 가장 큰 근심거리는 무엇입니까?”

이에 안영이 “근심되는 일은 바로 사당(祠堂)의 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왕이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무릇 사당은 나무를 얽어 묶고, 그 위에 흙을 발라 만들었습니다. 쥐란 놈이 그곳에 의탁해 살고 있지요. 이 쥐를 잡으려고 불을 지르자니 나무가 다 탈까 두렵고, 물을 부어 쫓자니 흙이 무너져 내릴까 두렵습니다. 이 쥐를 쉽게 잡아 내지 못하는 것은 그곳이 사당이기 때문이지요. 나라에도 이런 사당의 쥐 같은 자가 있습니다. 바로 임금의 좌우 신하들이지요. 이들은 안으로는 임금이 선악(善惡)을 구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으며, 밖으로는 그 권세를 팔아 백성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혼란이 일어날 것 같고, 죽이자니 임금에게 의탁하여 마치 임금의 뱃속에 있는 경우와 같습니다. 이 역시 나라의 사서(社鼠-나라를 좀먹는 자)입니다.”라고 했다. 마지막의 `이 역시 나라의 사서입니다.'라는 표현은 임금 또한 `나라를 좀먹는 자'가 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며칠 전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들이 자신의 이름을 왜 `안영'이라고 지었냐고 물어왔다. 바쁜 아침 시간이라 빙긋이 웃으며 스스로 알아보라고 했다. 안영 같은 훌륭한 인물이 우리나라에 왜 없겠나? 우리가 보는 눈이 없을 뿐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아이 넷을 키우는 아빠로서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이 역사가 새 옷을 갈아입기 위해 더러워진 옷을 벗는 과정이라고 위안해본다. 돌이켜보면 일제강점기를 견뎌내고 6·25를 거치며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그 모든 것이 우리 국민들의 힘이었다. 그 모든 공로가 마치 누구 한사람의 신화처럼 여겨지는 어리석은 역사는 이제 끝을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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