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순국선열의 날에 즈음하여
제77회 순국선열의 날에 즈음하여
  • 김명식<충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 승인 2016.11.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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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김명식<충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11월 17일은 111년 전 1905년 대한제국이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을사조약이 늑결(結)된 날로써 한민족으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을 전후하여 수많은 분이 순국하였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1939년 11월 21일 법정기념일로 공포하였다. 광복 후에는 광복회 등 민간단체가 주도하여 추념 행사를 거행하여 왔으며 1997년 5월 9일 정부가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한민족으로서는 울분과 통탄의 날로써 결코 잊을 수 없는 치욕의 날이다. 이날을 잊지 말고 국권회복을 위해서 다시는 그러한 치욕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데 법정기념일의 취지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쉽게 짐작이 가는 바이다.

111년전 대한제국의 망국이 서쪽으로 지는 태양과 같이 기울어갈 무렵 국권회복을 위해서 당시의 위정자들은 무엇을 하였는지 요즘의 세태와 비교하여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을사늑약은 단지 흘러간 과거가 아니다.

을사늑약의 교훈을 잊는다면 미구에 비극의 역사가 도래할 것이다. 사실상의 망국으로 그 후 1910년 8월 일제의 병탄(倂呑)은 결코 우연이 아닌 을사늑약의 연장선에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 국력을 결집하여 자주적으로 역량을 구축하여야 했으나, 외적으로는 외세에 의존하여 자주성을 잃어가고, 내적으로는 부패와 무능, 분열과 갈등, 사리사욕에 기반한 권력추구를 위한 집요한 정쟁(政爭)이 간단없이 진행되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국권회복을 위해서 신명을 바친 무명 선열들도 부지기수이지로, 국내외에서 기울어가는 국권회복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지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야 할 것이다.

한 번 상실한 국권은 회복하기가 결코 용이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선열들의 불굴의 독립투쟁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연합국의 승리로 광복이 되었지만 아무런 독립투쟁이 없이 좌시만 하였다면 소위 강대국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쉽사리 봐주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일신과 가정을 초개(草芥)와 같이 버리고 독립투쟁에 헌신함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거나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일신의 안녕과 가정의 평화를 바라며 또한 그 길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들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하여 77년전인 1939년 11월 21일 한국독립운동의 구심체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임시의정원 제31회 임시총회에서 지청천(池靑天), 차이석(車利錫)등 6인의 제안에 따라 사실상의 망국일인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하였는데 그에 대한 취지 및 선열에 대한 추념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한다.

식민지로 공고화(鞏固化)되어가던 1939년에도 결코 독립투쟁의 끈을 놓지 아니하였던 선열들의 불멸의 독립투쟁정신을 국민 또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충분히 홍보하고 교육하여 계승전승 되게끔 하여 다시는 국권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을사늑약의 치욕이 왜 발생했으며 그 후에 어떠한 결과와 영향이 있었으며, 오늘날에는 을사늑약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순국선열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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