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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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11.1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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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몇 년 전 판사를 하던 변호사에게 물었다.

“내가 내 자식을 청탁하면 문제가 되지만, 내가 내 학생을 청탁해도 청탁이냐?” 변호사는 대답했다. “학생 취업 부탁이 어떻게 청탁이 되겠느냐?”고.

그런데 청탁금지법 발효 후에 상황이 바뀌었다. 공채과정에서 응모자 모두에게 추천서를 요구하고 내가 학생을 위해 그것을 써주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개인적으로 제자의 취업을 부탁하면 청탁이 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청탁금지법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안타까운 이 부분이다. 많은 교수가 기업과 관계를 맺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학생 취직 부탁이었는데, 그리고 그것은 미덕이고 의무였는데, 이제는 공정한 경쟁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로 보인다.

나는 학생들에게 자신감 있게 말했었다.

`자네들과 내 관계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청탁이 법적으로 보장된 사이'라고. `내가 내 자식을 부탁하면 부정청탁이 되지만, 내가 자네들을 부탁하면 제자사랑이 넘치는 선생이 된다'고.

주위 교수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이렇다.

`내가 내 제자를 부탁하는 것도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만일 내가 주관적으로 마음에 든다고 추천을 하면 그것은 학생들에게 공정하지 않은 것이라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일정한 기준에 맞춰서 학생을 추천해주어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이제 애제자(愛弟子)라는 말도 삼가야 할지 모른다. 누구를 더 사랑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은 것이라면 말이다. 행여나 애제자에게 밥이라도 얻어먹었으면 청탁이 확실해진다.

청탁금지법 이전의 일이니 말해도 되지 싶다. 10수 년 전에 나의 청탁(?)으로 경찰이 된 제자가 있었다. 우연히 나를 찾아왔고, 뭐하냐고 묻자, 경찰 시험에 돼서 면접만 남았다는 것이다(경찰면접대상자는 1.5배수로 뽑는다).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전화로 부탁했는데, 그 사람이 운 좋게도 다음날 면접위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이 면접위원이 된 것도 운이고, 졸업한 친구가 나에게 인사를 온 것이 운인데, 그런 운이 겹쳐 경찰이 된 것이다. 물론 내가 전화를 안 했어도 합격할 수도 있었다.

예전에는 “역시 인사 잘하는 놈이 복 받아”라고 쉽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래서는 안 된다. 최근 이 이야기가 화제가 됐는데 어떤 학생이 반발했다. “만일 그 전화로 그 사람이 취업이 됐다면, 그 사람 때문에 떨어진 한 사람은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나의 전화로 제자는 됐지만 누군가가 떨어졌다면 나는 악행도 동시에 저지르는 셈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스님은 결코 합격기도는 안 한다고 했다. 왜냐면 그 친구가 되면 누군가가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친소도 좋고 의리도 좋지만 “과연 무엇이 옳은가(정의)”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것이다.

청탁금지법 발효 이후 법원장과 공보판사를 만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물어보았다. 제자 취업청탁도 걸릴 수 있단다. 그럼에도 (내 생각도 그랬지만) 학생에게 밥 사주는 것도 교수평가가 있기 때문에 청탁에 해당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장은 법시행 초기에는 상세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학교에서도 자체 해석을 내놓았다. 교수가 학생 밥 사주는 것은 괜찮단다. 그러나 그런 일도 없었지만 교수는 상급자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얻어먹으면 안 된다. 이미 시들해졌지만 몇 년 뒤면 `사은회가 뭐냐?'는 대학졸업생이 나올 것 같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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