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차이와 반복
매일의 차이와 반복
  • 배경은<충북기독병원 원무과>
  • 승인 2016.11.1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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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충북기독병원 원무과>

아침에 출근하면 언제나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 서른 살, 지적장애 2급의 영수(가명) 씨다. 병원에 입원해서 생활한지 1년 남짓, 병원복 대신 츄리닝 차림의 그는 늘 웃고 다닌다. 원무과 문을 열면 제일 먼저 쓰레기통을 비워주는 그에게 고맙다는 답례로 봉지커피 하나를 건넨다. `선생님, 우리 집이 어딘 줄 아세요?, 선생님, 내일도 쓰레기통 비워 드릴게요, 선생님, 우리 엄마 언제 온 데요?' 어떤 날은 퇴근 시간까지 열댓 번은 찾아오는 것 같다. 귀찮을 때도 가끔 있지만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어느 날, 종일 보이지 않아 걱정될 즈음 나타난 그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왜 그런지 물었지만 알 수 없는 이야기만을 되풀이하고 사라졌다. 마치 감정의 지도를 잃은 사람처럼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한동안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디즈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사람의 뇌 안에서 움직이는 다섯 가지 감정이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기쁨'이 모든 감정의 중심이며 탁월한 것처럼 줄거리는 시작되지만 여러 가지 위기상황을 겪으며 슬픔, 분노, 두려움, 소심함까지 모두 자신의 정직한 감정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 상태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혹은 묵언으로 합의된 집단감정의 창살 속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신념에 빠져 있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나조차도 기쁘거나 즐거운 감정만을 추구하려고 하며 우울한 상태를 직면하려 하지 않고 회피하는 데만 급급함을 볼 때가 있다.

영수씨가 우울해 보이는 날은 병원복도에서 만나도 인사하는 것조차 잊는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깊은 사유 중이라고 생각한다. 지켜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같은 미소로 웃어주는 것이 전부다.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아 그가 머물다간 자리는 환기를 시켜야 하지만 그에게 씻으라는 말은 가두는 말이 되는 것 같아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두곤 한다. 안 그래도 갖은 스트레스가 기억의 그물에 걸려 곱씹을 그에게 씻어 달라는 말은 하나의 스트레스를 얹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찾아와 사무실 쓰레기통을 비울 때가 가장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정신지체와 정동의 문제까지 있는 그가 규칙적이고 규율적인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매일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는 형식은 같지만 다른 내용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질 들뢰즈가 말한 차이의 관점으로서의 삶이다.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적인 삶이 자신을 스스로 창조적이며 좀 더 자유로운 생으로 인도할 거라는 말이다. 최고의 자리, 한 사람만을 위한 단 하나의 자리를 두고 다투지 않고 들뢰즈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새로운 차이로 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만들어진 세상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은 소수 사람들, 균질한 것이 아니면 용서가 되지 않아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여기서도 폭력과 상처가 오고 가지만 여느 바깥의 사람들 마냥 아예 등을 지거나 야멸차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각자의 독특함을 받아들인다. 세상의 리듬을 보태는 사람도 있고,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있는 시절 속에 우리 모두가 차이의 새로운 반복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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