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일의 경지
합일의 경지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11.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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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튀는 놈, 나는 놈, 덜떨어진 놈에, 고독의 상징인양 섬이 된 놈도 많다. 돌무더기이다. 그냥 두어도 좋았는데 생각해 둔 것이 돌탑이다.

돌을 더 모아 들였다. 눈에 띄는 돌마다 욕심이 난다. 고사하고, 돌만 눈에 들어온다.

지천인 돌을 주워내고 과수와 화초를 심을 양이었는데 목적이 생기니 집착에 가깝다. 집착이 도리를 넘어서면 창궐하는 전염병처럼 사람 여럿 잡고 자멸에 이른다는 이치를 사소한 욕심에서 다시 깨친다.

돌탑의 궁극 목표는 합일이다. 바닥에 뒹굴 때 다져진 돌과 돌밭 같은 인생을 걸어온 내가 하나가 되는 일이다. 하여 나는 돌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저 난해한 개성과 교만과 고독의 아성을 끌어안고 화합을 시도하는 일이다.

큰 돌부터 놓았다. 제멋에 겨워 타협을 모른다. 윗돌이 고만고만하면 아래서 트집을 잡고 아랫돌이 원만하면 위에서 까탈을 부린다. 굄돌로 균형을 잡고 틈새는 작은 돌로 메웠다.

굄돌은 아무 돌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마음 없이 놓아도 아니 된다. 아집을 다스리는 덕이 있어야 하고 보듬어 안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굄돌은 대의大義를 위한 소아의 갸륵한 희생이다. 가붓하지만 속은 깊어 저를 드러내지 않는다. 저를 낮추고 있지만 열등이 아닌 겸손이다.

탑이 올라갈수록 내 오기가 무색하다. 쌓았다 허물고 또 쌓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하나가 되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 손을 털고 일어섰다. 사나흘 지나서 마음을 다잡고 갔더니 돌탑이 무너져버렸다. 오기와 아집으로 쌓은 탑이 오죽했을꼬. 굄돌을 닮거든 다시 와야겠다.

염원을 두고 쌓는 탑은 신앙이다. 나는 무슨 이유로 돌탑을 쌓으려는 것인가. 여러 날을 버려두었다. 주말 아침에 다시 마음을 내었다. 차분하게 돌의 객기를 다스리고 불협화음을 조율하니 탑이 올라간다.

파도에 담금질을 당한 적도 없고 비바람을 탄 일이 없이 고이 흙 속에 묻혔던 돌은 아집이 유난하다. 사방으로 돌려가며 타협을 해도 저를 고집한다. 구순한 작은 것이 무게를 받쳐 든다.

산등성이에 햇귀가 비친다. 막 세수한 얼굴로 둥실둥실 오른다. 벙긋벙긋 웃는다. `그가 나를 아는 겐가, 내가 그를 아는 겐가.' 하늘 아비 등에 업고 땅 어미 등에 업혀 중천으로 나선다. 중천에 올라서면 비로소 세상과의 합일에 이를 것이다.

완성된 탑에 머릿돌로 둥근 돌을 올렸다. 그래야 하는 사연이 있다. 사람은 원만하면 감싸 안는 너그러움이 큰데, 탑을 쌓는데 둥근 돌은 접근하는 모든 것을 배척한다. 너그러움은커녕 오롯이 저만 드러나고 싶어 한다. 저만 둥글다고 세상이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탑의 궁극목표가 합일일진데 둥글다고 배제한다면 의미가 없다. 머릿돌로 앉혀놓고 뭇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어준다면 그럴싸하지 않겠는가.

둥근 머릿돌 위에는 묵직한 염원 하나 올렸다. 남편이 엄지를 불쑥 세운다. 탑이 앉은 모습이 범종을 닮았단다. 나도 엄지를 쌍으로 올렸다. 당목撞木으로 칠 범종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다. 사바를 아우르는 부처님의 종소리를 감히 흉내 낼 수 있겠는가. 내 마음 하나 잔잔히 울려 줄 작은 종이다. 그렇더라도 기껍다.

돌탑은 돌과 돌의 합일이다. 나와 돌의 합일이다. 나와 나의 합일이다. 돌아가는 길에 종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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