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다는 것
단순하다는 것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공예세계화팀장>
  • 승인 2016.11.15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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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참으로 변덕스러운 날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계절에 맞지 않은 삭풍을 맞다 때아닌 더위에 시원한 곳을 찾던 오전 날씨는 지역을 달리하면서 비를 내리 부었다. 무슨 놈의 날이 이리 변덕스러운지 벗었던 웃옷을 다시 주섬주섬 입고도 추워서 옷깃을 여미었다. 그러고도 뭔가 모자란, 서글픈 속을 채워줄 따뜻한 차 한 잔 생각하며 약속된 자리를 찾았다.

약속된 장소의 입구에서 문득 목적한 일을 뒤로하고 갤러리로 발을 옮긴다. 10여 년 전 인상깊게 뵈었던 작가의 전시포스터를 본 터였다. 약속시간을 10여분 앞둔 상황에서 뭔지 모를 기운에 갤러리로 자연스레 발길이 옮겨진 거였다.

일을 마치고 다시 찾은 갤러리. 그곳에는 아주 게으른 지리산골 목수의 일감과 깊은 차향이 함께 있었다.

제주의 홍가시나무, 박달나무, 먹감나무를 주로 하여 형태에서의 단순함으로 목리가 주는 다양한 문양과 색감을 보여준 작품들이 주였다. 매년 전시를 하면서 형태가 점점 단순해져 감에 나무가 주는 본연의 맛을 더더욱 강조되는 작업이다.

게으른 목수는 나무를 대하며 가장 어려웠던 작업이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쳐내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처음 나무를 접하면 전체를 살리고 싶고 오히려 이런저런 장식을 하려 하는 게 다수의 작업방식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림을 그렸던 작가는 나무에 매료되어 나무를 대하며 쳐내는 시간이 나무를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나무를 가장 나무답게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단순화시키는 작업이었다 한다. 단순화시키는 작업이란 곧 쳐내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쳐내는 작업은_단순화하면 할수록 좋은 디자인이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걸 알면서도 늘 하는 작업의 결과물들은 연관된 것을 붙이는 것에서 불필요한 부분까지 배가시켜 결국 보여주려고 하는 고갱이가 무엇인지를 애매하게 하는 것이 많다.

우리가 잘 아는 기호 중에 남녀를 상징하는 기호(♂♀)가 있다. 여자와 남자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호, 그것의 시작은 신화에서 시작된다. 대지의 신 가이아가 우라노스를 낳고 우라노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생식기를 잘라 떨어진 장소에서 거품이 일고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손에 늘 들려 있었던 거울에서, 가장 남성다웠던 마르스를 상징하는 창과 방패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취한 것이다. 주변의 부가적인,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시킨 것이다. 결국 좋은 디자인, 좋은 구성이란 것은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것을 이야기한다.

핵심이 무엇인지가 불명확할 때 주변의 잡다한 것을 들이댄다. 한 문장으로도 명확한 문구에는 미사여구가 필요치 않다. 많은 재료를 가지고 우려낸 육수, 시간이 만들어낸 깊은맛에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무채색이라 말하는 먹에서 보여주는 색감은 깊고도 깊은 색감이 있다. 화려한 색을 버렸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최상인 비행기에는 이렇다 할 장식적 요소가 없다. 겨울을 맞은 11월의 나무는 낙엽을 떨군다. 녹음에 보이지 않던 줄기와 나뭇가지를 드러낸다. 버릴 것 다 버린 나무들이다. 삭정이마저 떨군 나무들이다. 스스로 솎아낸 것이다. 가장 필요한 나뭇가지라 여겨지는 것들만 남는 것이다. 잘린 자리는 목피가 덮고 그렇게 상처 난 부분까지도 한 부분으로 만들어간다. 그것은 자신 본연의 핵심을 인지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그럴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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