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더하기 빼기
삶은 더하기 빼기
  •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6.11.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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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무뎌진 감성을 깨워 보려고 들길로 나섰다. 시골마을에 도착했을 때 천변엔 문화축제를 즐기기 위해 나온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들판에 옹골지게 익어가는 곡식들, 시골집 담장 너머 붉게 달려있는 감은 한 폭의 풍경화요, 그대로 축제장의 배경이다.

농부의 곳간은 얼마나 풍성한가. 결실의 계절답게 축제장은 농산물로 풍년을 이뤘다. 땀 흘린 만큼 거둔 알곡들, 윤기 흐르는 싱싱한 사과와 감, 금방 캐서 쪄 먹는 포실한 고구마와 알밤도 옹골차다. 여름내 혹독한 더위와 가뭄을 이겨내고 수확한 농부의 마음은 한량없이 기뻤으리라.

볼거리도 다양하다. 메인 무대에서 펼쳐진 주민과 함께하는 음악회도 좋았지만, 전통 의상에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페루의 거리공연은 참 인상적이었다. 은은하고 감미롭게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취해 연주자와 관객은 모두 하나가 되었다. 가을 햇살처럼 은은하고 따스한 온기가 귀로 흘러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이어 장사씨름대회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각 지역에서 선발된 젊은 선수들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소처럼 우직한 양 팀의 선수들이 서로 뒤엉켜 힘을 싣는다. 나는 약자를 응원했다. 마침내 승부가 결정되고 승자가 패자를 격려해주는 모습이 정겹다. 그 사이 관중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퀴즈쇼가 진행되었다. 그 지역 사람 수를 묻는 퀴즈였다. 어떤 노인이 답을 말했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나는 재빠르게 일어나 어림짐작으로 답을 말했다. 순간 안내데스크에서 정답이라며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렸다. 상품으로 그 지역 농산물인 고구마 한 박스를 탔다. 이게 웬 떡인가. 살다 보니 굴러들어온 횡재도 있다. 그것도 달콤한 고구마라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나른한 오후, 짧은 가을볕을 아쉬워하며 차에 올랐다. 그런데 조수석 앞쪽 유리창이 자꾸 어른거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앞유리가 30cm 넘게 금이 가 있는 것이다. 내려서 살펴보니 유리 틈새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패인 흔적으로 보아선 날카로운 송곳으로 찍은 것 같다. 블랙박스가 없으니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하고많은 차 중에 왜 하필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의 차를 그랬을까?”라고 했더니 운전하던 남편이 웃는다.

그래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있지. 오늘 하루 액땜한 것이라 여기자. 만일 더 크게 부서졌다면 오도 가도 못 했을 터,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흠집이 난 자리에 강력접착제를 발랐다. 가해자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의 마음은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이 났으리라.

살면서 얻은 것이 있는가 하면 잃은 것도 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횡재는 다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농부가 땀 흘려 일해야 곳간이 풍성한 것처럼 세상에는 횡재도 없는 법이다. 젊어서는 재산도 명예도 건강도 불꽃처럼 피어오르다가 나이 들면 힘없이 사위어드는 것, 간혹 대박의 로또를 꿈꾸지만 통장의 잔고도 늘었다가 줄어드는 것, 그러기에 삶은 더하기 빼기의 연속이 아니던가. 수학문제를 풀 듯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 여정이듯이….

모처럼 자연을 벗 삼아 음악과 함께했던 하루는 가을 하늘만큼 깊고 푸르렀다. 축제의 행사로 거리공연에서 들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팝송 철새는 날아가고(EI Condor Pasa)를 입속으로 우물거리며 이 가을, 더하고 뺄 것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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