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문화와 광장의 힘
광장 문화와 광장의 힘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11.13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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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취재3팀장(부장)

지난 12일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세종로, 을지로 일대까지 시민들로 가득 메워졌다. 오전부터 전국에서 버스로, 기차로, 자가용으로 속속 모여든 시민들은 본 행사가 진행된 저녁 7시쯤에는 백만 명에 가까웠다는 소식이다.

이는 1987년 6월 항쟁이후 최대의 촛불 집회로 기록될 전망이다. 실시간 현장이 방송으로 생중계되고, 하늘로 띄운 드론이 보여준 광화문 주변 1㎞ 반경은 촛불로 가득했다. 낮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은 계층이 다르고 표현이 달랐지만, 한결같이 한목소리를 냈다. 성난 민심은 광장을 가로질러 침묵의 청와대로 향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 수를 두고 경찰과 주최 측의 집계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찰은 집회인원을 26만명으로 추산하고, 주최 측은 1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집계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양측의 인원 차이만 보더라도 현실을 바라보는 온도 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몇 명이 집회에 참가했느냐의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을 국민이 얼마만큼의 위기로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숫자가 가지는 파괴력은 어느 것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광장문화는 민심을 드러내는 힘을 증명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광장문화가 발달한 서양은 토론문화로 발전시키며 중요한 논의의 장이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에게 진리를 강연했던 곳도 광장이었고, 크고 작은 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진 곳도 광장이었다. 오랜 문화로 광장문화가 정착되면서 타인의 견해를 존중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든 것도 광장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광장문화가 낯설다. 조선은 서당이나 향교, 서원이 교육의 중심지가 되면서 선비문화로 굳어졌으니 마당문화로 보기도 어렵다. 근대 이후 광장의 개념이 들어섰고, 1945년 해방과 함께 광장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광장문화의 힘을 가장 잘 발휘한 나라를 꼽는다면 단연 한국이라고 자부할 정도다. 광장문화는 민심을 모으는 공간으로 활용되며 광장의 힘을 보여주었다. 역사상 4.19혁명 운동이 그랬고, 6월 항쟁이 그랬다. 무소불위 권력 앞에 목숨으로 저항한 운동이 광장에서 펼쳐졌다. 국민의 뜻이 모이는 곳에서 역사는 다시 바로잡아졌다. 그리고 역사는 늘 광장에 선 국민의 편이었다. 이번 서울 집회를 정치권이나 권력자들이 간과해선 안 될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에는 최순실로 이어진 국정농단이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에서 시작된 의혹이 최순실로 이어지고,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로 불거지면서 국정을 좌지우지한 최순실은 국민을 우롱하고 대한민국을 좌초하게 만들었다. 온갖 특혜와 비리와 국정 인사까지 흔들어 놓은 책임은 결국 대통령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가 위기 앞에 정책과 대안없이 흘러온 국가 경영을 최고의 책임자가 책임져야 한다. 여전히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끝이 보이지 않고 터져 나오는 최순실의 비리와 무책임한 정치현실은 국민을 좌절과 울분에 몰아넣은 것이다.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나온 국민의 엄준한 요구는 책임있는 정치이다. 그저 침묵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백만명이 모인 광장에서 화합과 단합을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광장의 힘으로 발휘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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