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고함
그들에게 고함
  • 임성재<시민기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6.11.1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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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점입가경이다. 최순실의 국정논단 보도가 처음 터졌을 때 마음으로는 제발 박근혜 대통령은 몰랐기를 바랐다. 권좌에 붙어 호가호위하려는 측근들의 비리로 끝나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분노를 넘어 허탈한 심정이었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모금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국정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최순실과 상의하라고 하고, 최씨 일가는 청와대를 제 집 드나들듯 하고, 대통령의 주사약까지 최순실이 관리했다는 의혹을 대하면서 이게 진정 나라인가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에 앉아 조정하고 있는 최순실을 그린 풍자카툰이나 `샤머니즘 스캔들'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외신보도는 대한민국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때 한 말을 인용하면 `이러려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을 했는지 자괴감마저 든다.'

팔순이 훌쩍 넘으신 어머니는 요즘 걱정이 많으시다. TV 앞에만 앉으면 대통령이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땅 꺼지게 한숨을 내쉰다. 박근혜를 대통령 만들겠다고 병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투표장까지 부축해서 모시고 갔던 일을 후회한다. 박근혜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며 노인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투표해서 이렇게 됐다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국민에게도 미안하다고 하신다. 국민까지는 좀 과한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씀드려도 정색을 하며 내가 뽑았으니 국민에게도 미안하단다.

어머니는 정말 몰랐을 것이다. 최태민이 영적 세계를 들먹이며 박근혜에게 접근한 사실이라든지, 최순실이 최태민의 다섯째 딸이라든지, 40년 동안 아버지에서 딸로 이어지는 박근혜와 최 씨 일가와의 관계 같은 것은 몰랐을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친박이니 쪽박이니 하며 불나방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이쪽저쪽을 넘나드는 정치행태라든지, 문고리 3인방 같은 측근세력에 대해서도 잘 몰랐을 것이다. 그저 비운에 유명을 달리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딸이라는 사실이 안쓰러워 박근혜를 지지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한탄을 들으면서 든 생각이다. 아흔 살이 다 돼가는 노인도 박근혜를 찍어 대통령에 당선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국민에게 미안하고 자식들 보기가 부끄럽다는데 하는데 박근혜라면 사족을 못 쓰고 쫓아 다니던 그들은 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 해보겠다고 국회의원 해보겠다고 자치단체장 한번 해보겠다고 박근혜에게 줄을 대기 위해 기를 쓰고 다니던 그들, 스스로 `친박'임을 만천하에 자랑하며 박근혜를 대통령 만드는데 공을 세웠다고 우쭐대던 그들, 그런 것을 인정받아 자신의 전문성과는 전혀 무관한 공공기관에 한자리를 얻어 호가호위하던 그들은 다 어디로 기어들어가 도민에게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얼빠진 지역의 정치인처럼 그래도 소신껏(?) 박근혜를 옹호하고 나서든지, 아니면 그런 사람에게 줄 댄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하여 자신의 직책에서 사퇴한다든지, 아니면 정말 그럴 줄은 모르고 빌붙었었는데 자괴감이 든다며 용서를 해 달라든지 이렇게 정치인답게 책임감 있게 고백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다 안다. 누가 지난 선거에서 박근혜와 찍은 사진을 내걸고 박근혜 마케팅에 나섰는지를. 누가 친박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려고 여기저기 줄을 대고 다녔는지를. 누가 박근혜 덕에 분에 넘치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거들먹거렸는지를. 이제 그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몰랐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정치인이나 사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들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그들의 명단을 만들어 공표하고 그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단순한 권력층의 부정부패사건이 아니다. 나라의 경제와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국가기강을 송두리째 뒤흔든 국기문란사건이다. 이 사건을 바르게 치유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없다. 이제 검찰의 성역 없는 조사를 촉구하고 이 사건의 부역자들을 찾아내 철저히 심판해서 다시는 이런 국기문란사태가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다.

*이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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