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감아요
두 눈을 감아요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숲해설사>
  • 승인 2016.11.0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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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숲해설사>

아마 가을이 되며 생긴 버릇일 테지요. 숲 속에서 그만 두 눈을 감아버리는 일이 잦아졌어요.

가으내 가을 하늘을 바라보다가도 두 눈을 감아야 했어요. 수수하게 흔들리는 작은 꽃을 보다가도, 다가올 추위를 예감한 곤충들의 부지런한 겨울준비를 들여다보다가도, 햇볕에 따뜻하게 달궈진 바위에 앉아 낮잠에 든 잠자리를 보다가도 나는 아무 때나 눈을 감아야 했어요. 그건 아마 정면으로 태양을 바라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몰라요. 너무 눈부시고 아름다워 저절로 고개 숙이고 눈 감게 되는, 혹은 너무 쓸쓸해 그만 눈 감게 되는, 그건 기도이기도 해요.

눈을 감으면 숲은 한층 다감하게 느껴져요. 내가 깊이 숲에 담가진 느낌이에요.

1초에 600번이나 날갯짓을 한다는 파리목 곤충들의 분주한 소리도 그제야 들려요.

파리목 곤충들은 뒷날개를 퇴화시켜서 한 쌍의 날개로만 날아요. 그래서 빠름을 생존의 무기로 삼았지요. 퇴화된 날개는 아주 작게 곱아 들어 곤봉 모양으로 붙어있어요. 그걸 평균곤이라 하지요. `평균곤'은 평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서 파리목 곤충들의 빠른 비행을 도와요.

그 빠른 날갯짓은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눈을 감아야 그제야 볼 수 있어요. 눈을 감고 듣는 그들의 날갯짓 소리는 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워요. 팽팽해진 현을 튕기는 그런 소리예요.

갈참나무의 이파리들이 펄럭거리는 소리도 달라졌어요.

지난봄, 긴 잎자루에 달린 커다랗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의 이파리가 사나운 봄바람에 뒤집힐 때에는 온 산이 하얗게 물결 쳤었지요. 갈참나무 잎은 뒷면이 하얗기 때문에 그 힘찬 일렁거림은 봄 산을 깨우는 데 특효였어요.

추위를 몰고 오면서도 가을바람은 조금도 사납지 않아요. 따뜻한 봄 소식을 가져오면서도 사나웠던 봄바람과는 반대예요. 가을바람은 마냥 순순해요. 웃음기 살짝 머금은 얼굴처럼 부드럽지요. 붉어진 갈참나무 이파리들이 부드러운 가을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는 단조로운 듯 한층 성숙하고 여유로워요. 한 해를 더 살아낸 연륜이 그들을 깊게 하는 걸 테지요.

여러 날째 따뜻해요. 겨울을 재촉하는 비도 내렸던 터라 흙은 촉촉하지요. 봄날 같아요.

그래도 흙속에서 잠든 풀씨를 깨울 수는 없어요. 풀씨에게는 따사로운 햇살보다도 시원한 물보다도 겨울 추위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풀씨의 첫 번째 발아 조건이 겨울 추위라니,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건 너무나 간단해요. 여러 날 따뜻한 날이 계속된다고 쏘옥 고개를 내밀었다가는 곧 닥칠 겨울 추위에 죽고 말잖아요. 풀씨들이야 대부분 한해살이니 그 한 번의 실수는 아주 치명적이지요. 번식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건 초본류의 목숨들에게는 종말과도 같아요. 그래서 풀씨들의 유전자에는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는 세상의 법칙이 단단하게 입력되어 있지요. 풀씨들은 진짜 봄이 오기 전에는 꼭 감은 두 눈을 뜨지 않아요.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는 세상의 법칙.

겨울을 기억하고 예감하는 숲 속의 모든 생명 나름의 살아남을 방도를 꼼꼼히 들여다봐요. 모두 단단히 준비되어 있어요. 그래도 좀체 염려를 떨치기 어려워요. 어찌 이 추위를 견디어 낼지, 배고픔을 이겨낼지... 그들의 고군분투와 외로움이 내 속에까지 이입되어 자꾸 눈 감게 되는... 너무 아름답거나 쓸쓸하거나, 이래저래 가을은 눈 감을 일이 많았어요. 기도할 일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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