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반민특위를 생각함 2
-최순실 아바타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다시 반민특위를 생각함 2
-최순실 아바타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6.11.0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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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시민운동(Citizen Moveme nt)을 연구하는 사회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은 우리나라를 경이롭고 불가사의한 나라로 부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2002 월드컵 길거리 응원전의 거대한 용트림에 이어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건 당시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의 물결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동'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거슬러 올라가면 독재에 항거하면서 목숨을 위협하는 총칼에도 굴하지 않았던 4.19혁명과 1987년 6월 항쟁 역시 세계를 감동시킨 시민의 힘이었다.

주목할 일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2007년 태안 앞바다의 자원봉사 물결이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민주화 상징의 집권 시절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이 시민혁명은 정치가 시민에게 커다란 희망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웅변한다.

그 후 광우병 촛불은 `명박산성'으로 꺼져 버렸고 300여 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에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을 숙주로 삼아 최순실이라는 기생충이 창궐한 것 아닌가.

시민들은 최순실 게이트가 나라를 마음껏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나서야 비로소 침묵과 방관을 걷어치우고 다시 한 번 거리로 나섰다.

잘못을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고스란히 미래가 된다는 명제는 이제 더욱 뚜렷해졌다.

다시 `반민특위'를 생각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최저 5%대의 지지율이라는 최악의 상황과 사실상 국정이 마비된 것과 다름없는데다 예산국회마저 표류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당장 1년조차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절망적이다.

그러니 2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고, 이번 주말 더 큰 시민의 분노가 물결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모르는 척했던 정치권과 지도자, 보수 언론들조차 앞다퉈 부화뇌동하면서 분기탱천하는 일은 비극이다.

반성을 하려면 더 철저하게 자기반성을 해야 하고, 그 반성문을 시민 앞에 제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과오에 대한 철저한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한 그 잘못은 고스란히 미래로 전이되면서 최순실의 아바타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 문제는 `진실'에 있다. 그동안 우리는 말 하지 못하고, 말할 수 없었던 나라와 시민 전체의 응어리진 원한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었던가. 아무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고, 아무도 진실을 깨우치려 하지 않는 사이 점점 더 커져버린 트라우마가 분노라는 이름의 질풍노도와 같은 촛불이 되고 있다.

스테판 에셀은 시인 프리드리히 휠덜린의 싯귀 “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커진다”를 인용하면서, 우리 안의 잠재력과 우리가 가진 모든 가능성으로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민 혁명적 집회가 끝난 뒤 광화문 광장을 말끔히 청소하는 성숙한 시민의식만큼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끊는 `다시 반민특위를 생각함'이 절실하다.

“분노한 다음 날이 더 중요하다.” 슬라예보 지젝의 메시지를 기억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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