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강물처럼
우리도 강물처럼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6.11.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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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10월 30일 일요일 아침, 가볍게 운동복을 입고 충주세계무술공원으로 향했다. 충주사과마라톤 대회에 우리 반 아이들 28명 중에서 19명이 참가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늦가을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맑았다. 공원에 많은 사람과 함께하니 마음이 들뜬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번호표를 붙여주며 재잘대는 소리가 싱그럽다.

마라톤을 앞두고 사회자가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뛰다가 통증이 오면 속도를 늦추어 달리고, 그래도 아프면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초빙 강사의 지도로 몸풀기 체조도 하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팔을 벌리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전직 마라톤 선수였다는 사회자는 준비 운동을 여러 번 반복시키며 안전을 강조하였다. 사람들은 개회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움직여서 다리를 풀었다.

모두가 출발 초읽기를 함께 외쳤다. 100여 명의 하프 코스 참가자들이 탄금호를 돌아오는 26km의 대장정을 향해 먼저 출발하였고 이어서 1,400여 명의 10km 참가자들이 출발하였다. 드디어 5km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 출발선이란 건 의미가 없었다. 중고등학교와 경찰학교, 회사에서 온 단체 참가자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했다. 아이들은 서로 번쩍 들어 올려주며 사람 구경을 하면서 놀라워하기도 했다. 사회자는 5km 참가자들이 가장 훈련이 안 되어 있어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바로 우리 반 아이들과 나였다.

수문이 열리고 뿜어져 나가는 물살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흘러나갔다. 나도 동료 둘과 함께 휩쓸려 나갔다. 우리 아이들도 이 길을 함께 뛰는 동료였고, 모르는 이들도 모두 오늘만큼은 동료들이었다. 길 한쪽을 내어주며 조심히 지나가는 차들, 그리고 우리가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지켜주는 도우미들과 경찰들, 높푸른 하늘과 짙푸른 탄금호, 색색의 단풍까지 모두 각자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며 함께 오늘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국정농단의 파문으로 후세에 커다란 역사의 소용돌이로 남을 역사의 시점인 오늘도 대한민국의 어느 소도시, 이곳에서는 건전하게 하나의 목적으로 함께 뛰는 `우리'가 있었다. 신립 장군의 뜨거워진 칼을 식혀주었던 탄금호의 푸른 강물이 우리와 나란히 흐르고 있었다.

탄금대교를 지나 갈마마을 한쪽에서 반환점을 돌았다. 하나의 덩어리로 출발하였지만 이제 선후 차이가 제법 크다. 우리 반 아이들이 반환점을 향해 가는 모습을 본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응원해 준다. 가장 어린 동료 하나는 힘차게 앞서가서 보이지 않고 둘이서 나란히 달린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다. 힘들어졌을 무렵 우리는 보폭을 조금 좁게 뛰었다. 확실히 좀 더 수월했다. 그렇게 우리의 능력에 맞게 잘 조절하며 무사히 완주하였다.

기념 메달을 목에 걸고 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은 포즈도 다채롭고 능숙하다. 공원은 사과 국수와 어묵과 두부김치를 푸짐히 먹으며 축제를 즐기는 여유로 가득했다. 도시를 감싸며 휘도는 남한강 줄기, 저 멀리 바람을 막아주는 계명산과 남산 자락, 그 안에 자리 잡은 나의 고향 충주의 가을이 풍요롭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 곳에서, 이 도시의 자연과 문화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성실한 일꾼들,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제 몫에 맞는 일상을 차근히 해내며 소박하게 행복을 일구는 평범한 사람들이 의연하게 오늘을 살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함께 하고 있었다. 격랑의 시간에도 유유히 흐르는 저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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