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가야할 길
세 사람이 가야할 길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11.0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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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백의정승(白衣政丞). 어떤 관직도 거치지않고 말단에서 단번에 정승에 오른 사람을 뜻한다. 실제로 이런 인물이 있다. 조선 숙종 때 학자 윤증(尹拯)이다.

그는 81세에 우의정을 제수받았다. 그 때까지 공직 경력은 전무했다. 초야에서 학문과 후학 육성에만 매진했다. 학식과 명망이 높아 조정의 스카우트 시도가 허다했지만 사양을 거듭했다. 38세에 임금의 첫 부름을 받았다. 공조좌랑 직책이 내려졌지만 고사했다. 조정의 집요한 호출이 시작됐다. 39세에 세자익위, 40세에 전라도사, 44세에 사헌부 장령, 45세에 집의가 제수됐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갈수록 제시되는 직책도 높아진다. 55세에 호조참의, 57세에 차관급인 이조참판을 거쳐 68세에 장관급인 공조판서, 70세에 이조판서, 73세에 좌참판이 제수됐다.

왕의 체면은 번번이 구겨졌다. 인사를 고사하면 임금 능욕죄를 걸어 유배나 사약을 내렸던 연산군 시절이었으면 그의 목은 10개도 모자랐을 것이다. 윤증은 백의정승이 되지는 못했다. 무려 열여덟 번이이나 사임 상소를 올리는 밀당끝에 왕의 의지를 꺾고야 말았다. 이유는 한결같았다. `자리를 감당할 그릇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 벼슬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고관들이 그의 겸양을 보며 스스로의 깜냥을 성찰하고 부끄러워 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국정에 기여했다.

청와대는 경질했던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민정수석 등 세 자리 인사를 전광석화 처럼 해치웠다. 그러나 전 국민을 공황으로 몰아넣은 희대의 스캔들로 좌초 위기에 놓인 정권, 단 5% 국민의 지지를 받는 쥐꼬리 정권이 문제적 자리들을 채우는 과정에서 누구 하나 의례적으로나마 고사를 했다거나, 결정을 미루고 고민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엄중한 시기에조차 권력과 감투에 탐닉하는 지도층의 처세는 국민을 더 허탈하게 한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는 “국정이 붕괴하는 상황을 보고 그대로 있기 힘들었다”며 눈물까지 짜냈다. 그러나 청와대가 기용한 것은 김병준이 아니라 그가 한때 정책실장을 맡아 보좌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 인연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 야 3당은 일제히 총리 인준을 거부하고 나섰다. 그의 꿈과 포부는 내정자에서 끝날 공산이 높다. 실권 총리를 보장받았다는 그의 호언과 달리 대통령은 다음날 사과 담화에서 총리와 관련해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바로 용도 폐기됐다는 구슬픈 얘기들이 나오는 이유다.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한광옥 비서실장 역시 야당과 호남으로부터 대통령을 방어하기 위해 긴급 동원된 인상이 짙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안에서 조차 그를 야권 인사로 보는 사람은 많지않다. 박 대통령 대선 캠프와 인수위에서 뛰었고 그동안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지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취임인사 차 찾아온 그를 “국무총리도 아니고 고작 비서실장이냐”며 면박했다. 야당의 싸늘한 반응을 볼 때 그가 청와대가 바라는 밥값을 할 수있을 지 미지수다. 그는 전임자가 `허수아비'라는 조롱을 받으며 5개월만에 떠난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 전철을 밟지않기 위해서라도 앉기 전에 더 고뇌하고 숙고했어야 할 자리였다.

최재경 민정수석은 검찰 재직시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넘어 추앙을 받아온 인물이다. 탁월한 실무능력에 리더쉽도 뛰어나 조직내 신망이 두터웠다는 평가다. 그의 청와대 입성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적지않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의 명망을 반증한다. 지금 대통령 발등에 떨어진 불은 청와대로 향하는 검찰 수사와 특검이다. 청와대가 최 수석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자명하다. 그 역할을 자임했다는 점에서 그는 주변을 실망시키고 있다. 추호라도 수사에 개입하거나 의심을 받게되면 그는 하루아침에 정권의 청부사로 전락하고 이름값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세 사람이 감투에 눈이 멀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있는 길은 하나다. 그 직을 거는 것이다. 국민의 분노가 어디서 비롯됐고 어디까지 왔는 지를 대통령이 정확히 인식하고 냉철한 선택을 하도록 고언을 쏟아내야 한다. 충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미련없이 자리를 내놓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국민의 총리, 국민의 비서실장, 국민의 수석참모가 될 작정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물러나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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