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 고약한 동네
인심 고약한 동네
  • 이수안<수필가>
  • 승인 2016.11.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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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뒤숭숭한 시국이다. 20만여명의 남녀노소가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 거리를 메웠다는 소식이다.

두 번이나 사과한 대통령에게 민심은 사과가 아닌 하야를 외치고 있다. 국민의 분노가 치솟자 정치무대의 인심이 야박하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지난 총선 때 빨간색 잠바를 입은 후보자들이 친박 마케팅으로 톡톡히 재미 본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확대해 엄청나게 큰 휘장을 만들어 건물 한쪽 벽면에 걸고 천군만마를 얻은 듯 발걸음도 가볍게 선거 운동하던 후보자들. 그중에 많은 수가 시·군의원이나 도의원 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소원대로 정치무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언론계에도 그런 분위기는 만연했다. 신문·방송들은 그 어떤 외부 압력에도 진실을 보도하겠다는 서릿발 같은 정신은 시궁창에 던져버리고, 통치자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쏟아내 왔다. 최순실에 대한 온갖 의혹에도 아니라고 우기던 친박, 계속된 의혹에도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을 외면하던 언론. 그러나 우리에게는 바른 언론 하나가 살아 있었다. JTBC를 통해 엄청난 진실이 드러나던 날. 온 국민은 진실이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절망과 동시에 희망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상한 것은 여권의 정치인들과 보수 언론이 합친 거대권력의 행보다. 그동안 걸어오던 길의 방향을 갑자기 수정해버린 것이다. jtbc 보도 이전과는 너무도 다르게 대통령의 자질과 도덕성을 문제 삼는가 하면, 탈당과 하야를 바라는 국민의 소리를 거르지 않고 그야말로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그동안도 의혹이 많았건만, 마치 생전 처음 이 사건을 접한 것처럼 앞다투어 보도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통령 곁에 최순실이라는 실세가 있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대통령에게 허술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는 말일까?

그들은 전부터 그런 내용을 알았을 것이다. 다 알았지만, 비련의 공주를 안타까이 여기는 순수한 민심을 이용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친박이라 자칭하는 사람들과 보수 언론이 합심해 지역감정과 색깔론을 부추겨 얻어낸 성공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준 권력을 자신들이 나눠 가지기 위해….

그렇게 탄생한 권력자에게 여당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친박이라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수시로 증명하기에 바빴다. 친박의 종류도 많아 진박(진실한 친박), 진진박(진짜 진실한 친박), 원박(원래부터 친박), 신박(새로운 친박), 뼈박(뼛속까지 친박), 찐박(진한 친박), 월박(넘어온 친박), 복박(돌아온 친박) 등등….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부류는 친박도 아니면서 친박 행세를 해 가박(가짜 박)까지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권력을 쥐여준 국민을 위해 일할 생각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에 아첨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대통령에게 힘이 있을 때는 떨어지는 부스러기 힘이라도 주워 먹기 위해 그렇게도 충성하더니, 자신들이 옹립한 대통령이 힘을 잃었다 싶으니 그새 태도가 싹 바뀐 것이다. 이번 사태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으며, 대통령과 다르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보에만 분주하다. 다음 권력도 자신들이 움켜쥐기 위해 꼬리를 자르는 것이 뻔하다. 의리도 없고 일관성도 없으며 정치철학도 없다.

인심 한번 고약한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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