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아닌 활인검 써야할 때
용서 아닌 활인검 써야할 때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6.11.0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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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맹자님은 눈앞의 이득을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소인배와 달리, 군자는 오직 상황 상황에 맞게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사단의 마음을 올곧게 쓸 뿐임을 강조하셨다. 맹자님의 말씀처럼,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오직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시비지심인 지(智)의 마음이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자들이, 짐짓 자신들의 죄를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처럼 꾸미는 표정과 악어의 음흉한 눈물로 호소하는 교활한 짓거리에 속아서 그들의 잘못을 덮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자신들의 죄를 은폐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소인배들의 얄팍한 술수에 넘어가 동정심을 일으키는 것은 그 무늬만 인(仁)이고 용서일 뿐, 지독한 어리석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건강을 위해 우리 몸의 암세포를 잘라내듯, 우리 사회에 기생하는 암세포들 또한 단호하게 잘라내야 한다.

암세포를 잘라냄으로써 겪게 되는 일시적 고통과 혼란의 시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사회 전역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청산함으로써, 모두가 살기 좋은 건강한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대수술임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수술의 고통과 회복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며 기뻐할 일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은 암세포를 보듬는 값싼 동정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명명백백하게 가려내는 시비지심의 지(智)의 마음으로 수술용 메스인 활인검(活人劍)을 쓸 때다.

다만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자들에 대한 기본적 인권마저 유린하는 잔혹한 마녀 사냥은 지양해야 한다.

예(禮)를 잃고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사생활까지 파헤치는 저급한 언론들에 부화뇌동하며, 사건 해결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불필요한 감정을 낭비하는 일은 자제함이 마땅하다.

그 누구보다도 어진 마음인 인(仁)과 용서를 군자의 덕목으로 강조하셨던 공자님은 “觚不(고불고) 觚哉(고재)! 觚哉(고재)” 즉, “고가 고답지 않으면 어찌 고이겠는가? 고이겠는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서 고란 모서리가 있는 제례용 술잔으로, `고가 고 답지 않다는 것'은 모가 나야 할 술잔이 모가 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올바름을 드러낼 때는 드러내고, 삿됨을 파할 때는 파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 즉, 둥글어야 할 때는 둥글고 모가 나야 할 때는 모가 나야 함을 강조한 말씀이다.

공자님은 또 과공비례(過恭非禮)란 말씀을 통해, 상대에 대한 배려도 지나치면 예가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신 바 있다.

하물며 해서는 안 될 패악을 저지른 것을 용서하고 넘어가는 것은 망국(亡國)으로 치닫는 어리석은 소인배의 짓일 뿐, 인(仁)도 예(禮)도 용서(容恕)도 그 무엇도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의 진행 추이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높이고, 행동해야 할 때 다 함께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지금은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썩어 문드러지게 한 암세포들을 단호하게 잘라내는 대수술을 결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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