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연가
나그네 연가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11.0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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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가을이 깊어갑니다. 지난밤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가 내려 이별을 망설이는 나뭇잎들을 마구 떨구었습니다.

찬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떨어진 낙엽들을 나뒹굴게 하고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며 애잔하게 합니다.

만추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1960년대와 70년대를 풍미했던 한 편의 시와 한곡조의 노래가 시린 제 가슴을 적십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과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절창입니다. 생을 마감하면서 아름다운 소풍 잘 다녀왔노라 노래할 수 있는 천상병 시인의 시심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이제 산 날보다 귀천할 날이 더 짧은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태껏 소풍처럼 살지 못했으니 당연지사입니다.

그래요.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하늘나라로 돌아갑니다. 귀천하는 거지요.

어느 기슭에서 노닐다가 구름이 오라고 손짓하면 못내 아쉽더라도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아름다운 세상이었다고,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웃으며 귀천하길 소망하지만 지난 60여 년을 회고해보면 소풍 가는 날은 일 년에 한두 번뿐 날마다 전쟁 치르듯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가난해서, 못 배워서, 부족한 게 많아서 등이 휠 정도로 억척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것은 허리협착증과 협심증 걸린 병든 몸뿐입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나그네 인생을 노래한 `하숙생(김석야 작사ㆍ김호길 작곡)'입니다. 가사도 좋고 곡조도 애잔해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래요. 노랫말처럼 우리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하숙생입니다.

80년을 살던 100년을 살던 크게 보면 모두 하숙생처럼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나그네들이지요.

지구라는 하숙집에서 한생을 살다가 때가 되면 흔적 없이 휙 사라지는 별똥별 같은 존재들입니다.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인생이니 정과 미련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이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벌거숭이 인생이니 집착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가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아등바등 삽니다.

정 때문에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미련 때문에 이고 진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허우적거립니다. 새우등처럼 휘어져 가는 거죠.

날마다 웃고 산다 해도 기껏해야 백 년인데 왜 놀 때 놀지 못하고 쉴 때 제대로 쉬지 못했는지 병든 몸이 되고서야 때늦은 후회를 합니다.

돈도 승진도 명예도 다 부질없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이고, 동반자였습니다.

소풍도 건강해야 즐길 수 있고, 함께 즐길 도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소풍도 이내 시들해집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심신과 편안한 도반이 있다는 건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저기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더 늙기 전에 더 아프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하시고, 소풍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떠나세요.

구름이 언제 손짓할지 몰라요.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바로.

/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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