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청탁금지법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11.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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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우리 사회가 이젠 선진사회로 들어서나 보다. 오랜 시간을 끌더니 마침내 김영란 법이라고 불리는 청탁금지법이 발효(2016.9.28.)되었다. 국가기관마다 난리인 모양인데, 어쩌면 그만큼 청탁이 많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얼마나 청탁공화국이었으면 그런 법률이 만들어졌을까?

국회의원들도 청탁 때문에 몸살을 앓았는지 어쨌든 통과를 시켰다. 그들의 지역구를 위해 공무원에게 전화부탁을 하는 것도 청탁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들도 함부로 전화는 못 할 것 같다. 공무원 본인이 자기를 위해 부탁하는 것은 김영란 법에서 처벌받지는 않지만, 제삼자를 부탁하는 것은 김영란 법에서 제재된다. 물론 본인청탁은 다른 법에서 징계대상이 된다.

그 반대로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내는 것은 `법안통과를 위해 노력하는 로비'에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 의회의 대청(大廳) 로비에서 벌어지는 정치활동은 열려 있다. 그것은 이른바 `청원'(請願) 또는 `진정'(陳情)에 속한다. 청탁은 법안과 상관없는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부탁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밥 먹자는 요구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좋겠다.

신문기자들이 그 법에서 빠지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알다시피 기자도 이쪽저쪽에서 청탁요구가 많이 들어올 것이다. “김 기자, 이 시장 알지? 다리 좀 놔줘.” 이런 식으로 말이다. 3만 원이 넘지 않은 밥은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청탁이 나왔다면 3만 원짜리도 안 된다. 시장도 제 돈 내야 한다. 그래서 무조건 `각자 내자'로 문화가 바뀌는 것이다. 밥을 얻어먹지 않았을지라도 기자의 권력 때문에 암암리에 압력을 받았다면 그것도 법률 위반일지도 모른다. 아니, 다리를 놓아준 그 자체만으로도 김영란 법에 걸릴지도 모른다. 이제, 기자 노릇 해먹기도 어렵게 됐다.

여태 기관이나 기업들이 공무원을 모셔서 강의를 시킨 것은 거의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던 것이 사실이다. 많게는 몇백, 적게는 백만 원을 손에 쥐여주려고 강의랍시고 모신 것이다. 그래서 외부강의가 문제가 된 것이다. 장관님, 차관님, 국장님, 과장님을 잘 대접해야 기관도 살고, 기업도 살았다.

국가기관끼리도 그런 상하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영란 법에서는 국가기관끼리는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예외조항을 두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2시간이 넘더라도 돈이 50만원 내외니 그것 받으려고 바쁜 시간 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국립대학 부교수 이상은 4급 이상으로 분류되어 시간당 30만원을 넘을 수 없고, 1시간이 초과하더라도 그것의 절반 이상인 45만원을 받을 수 없다. 다만 대상이나 주제가 다르면 또 받을 수 있다. 서울대처럼 법인화된 국립대학법인 교수는 자신을 5급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시간당 20만원, 최고 30만원을 넘을 수 없다. 이번에 세계인문학포럼이 있었는데, 김영란 법 시행과 더불어 서울대 교수에게 책정됐던 90만원이 20만 원으로 깎이는 일이 벌어졌다. 일반국립대 교수는 30만원으로 깎이는 데 비해 심한 것 같지만, 서울대는 법인화 전후로 월급을 매우 많이 올렸기에 할 말이 없다. 등록금도 일반 국립대보다 훨씬 비싸다.

그런데 국립대 자존심이 상할 노릇은 사립대교수의 강연료를 기자와 같이 시간당 100만원으로 정한 일이다. 국립대교수가 몇 시간을 하더라도 45만원이 상한선인 반면, 월급도 훨씬 많이 받는 사립대교수가 적어도 서너 배 넘게 더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회의장도, 장관도, 총장도 이긴 김영란 법이지만, 왜 사립대교수만큼은 누르지 못했을까?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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