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반민특위를 생각함
다시 반민특위를 생각함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6.11.0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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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이게 나라인가'라는 절망과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세상이다. 농단을 넘어 나라와 백성이 한꺼번에 유린당하는 엄청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이를 어찌 `지옥(헬조선)'같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한 줄의 글도 이어나갈 자신이 없다.

나라 안의 모든 일들이 멈춘 듯하고, 모든 생명은 숨죽이고 있는 지금 들불처럼 번지는 분노 또한 허망하다.

따로 언급하기조차 싫은 대한민국의 비극의 원인에 대해서는 따지고 또 따져서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절대로 양보와 타협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검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수사와 단죄보다 더 절실한 것은 이 모든 거대한 모순의 근원을 파헤치는 일이다.

나는 한국 근·현대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집권세력이 외세를 끌어들여 좌절시켰던 동학혁명은 그 중 첫 번째 것으로, 민본중심의 근대국가로의 개벽을 가로막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고 확신한다. 생각해 보라. 동학의 이념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니,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헌법 정신과 일치한다.

나는 1949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좌절을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불행한 일로 손꼽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헌법전문에 명기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는 소위 `건국절'논란은 반민특위 좌절에서 비롯된 역사적 도발의 일부일 뿐이다.

온 국민의 반대에도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면서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으로 된다'는 유체이탈 화법 역시 절대 모순에 대한 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식민지 시대의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고 친일세력이 처벌되기는커녕, 그들의 득세와 혹세무민에 무관심했던 과오는 너무도 크다.

지금 당장의 농단과 국정유린은, 군주 한 사람이 아닌 자격을 갖춘 다수의 공동선에 따라 국가 의사가 결정되는 `공화'와 그 공화의 내용이 공개된 과정을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또 유구한 역사에 대한 책임이나 진정성 없이 농단과 국정유린의 만행을 저지른 것 역시 역사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과정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의 기가 막힌 변신은 더 말하기조차 싫다. 게다가 정권의 시녀이거나 꼭두각시 같은 수식어도 입만 아프다.

문제는 근본에 있다. 저 `괴물'같은 무리가 활개를 칠 수 있게 단초를 제공한 이들은 국민, 즉 우리 자신이다. 그것도 모자라 거의 신적인 존재로 받들어 모시면서 `동정심'이거나 `공주'쯤 으로 대해왔던 것도 그동안 일그러졌던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니 그런 어리석고 어설픈 선택에 의해 초래된 이 비극과 불행에 대한 책임은 국민 모두에게 있음을 반성하는 일 또한 근본을 찾는 일이다.

반민특위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리하여 친일에서 비롯되는 모든 악의 근원과 모순의 뿌리를 청산하고, 진정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이 자랑스러운 나라로 다시 만들자.

책임을 추궁할 권리는 국민에게 있고, 심기일전, 희망을 다시 세울 힘도 국민에게 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밥은 백성의 하늘(民惟邦本 食爲民天)” 세종대왕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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