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공예세계화팀장>
  • 승인 2016.11.01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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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햇살은 어느 때보다도 눈부시도록 화사했고, 작업하는 내내 등에 따스하게 내리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어느 한적한 시골텃밭 하루의 시작이다.

아침 일찍 씨마늘을 놓기 위해 쪼개고, 자색양파는 정식하기 위해 텃밭 낮은 돌담에 가져다 놓고, 월동시금치를 파종하기 위해 두둑을 고르는 분주함 속에서 느끼는 햇살이었다.

너무나 화사하게 부서지는 햇살에 그간 텃밭과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아내와 이야기로 늘어놓는다.

추위가 물러나지도 않은 때에 냉이와 벌금자리를 뜯고, 흰 민들레와 씀바귀를 캐고, 고구마와 씨감자를 놓고, 고추를 심고, 양배추를 파종하고, 딸기를 심고. 기르는 족족 벌레에 더 많이 양보하고, 어느새 거름기는 풀에 내어주고, 허리까지 자란 풀 사이에서 힘겹게 이겨낸 놈들에게 미안해하고 감사하며 취해 먹는다. 그래도 너흰 벌레에 안 먹히고 풀과 싸워 이겨낸 놈들이니 이보다 건강한 놈이 어디 있을까?

나름 신경을 쓴다 했지만 어찌 보면 심어놓고 방치한 결과고, 결국 내 몫으로 오는 것은 아주 조금의 보상이다.

풀과 상관없는 과수에서도 상황은 매한가지다. 세 그루의 밤은 알알이 벌레의 먹이가 되다 못해 집이 되었고, 주렁주렁 달린 감조차 주인의 손을 기다리기 이전에 벌써 새들에게 그 달콤함을 먼저 건넨 것이 간간이 보인다. 그래도 좋다고 서로 웃는다.

다 먹으려고 한 것보다는, 씨를 파종하고 자라는 과정을 보고, 몇 개 안 되는 결실을 거두는 시간을 더 즐기기 때문이다. 어차피 더 많은 것을 취하려 했으면 거름을 하고 경운을 하고, 각종 약제를 방제시기에 맞추어 쳐야 했음에 비용과 시간이 없었던 차에 과한 욕심을 부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자라주고 벌레에게 먹힐 때는 가슴 아팠지만 나비가 되어 날아 꽃잎에 앉을 때는 내어주고 버텨준 것에 한없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렇게 힘들게 자란 놈들이지만 죽은 놈은 하나도 없다. 무더위에 지친 고추는 가을이 돼서야 자라기 시작했고, 고구마도 더위를 피해 땅속 깊숙이 자리하고, 밤은 제사를 올릴 정도는 되고, 감도 항아리 안에서 홍시가 되어줄 정도는 되었으니 이상 더 무엇을 바라리.

나의 텃밭은 모두의 터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것이 모여든다. 뱀이라 생각할 정도로 굵은 지렁이, 간혹 보이는 청개구리와 도룡뇽, 두더지에 뱀, 청벌레, 땅강아지, 벌, 이루 헤아리기 힘든 나비와 새들이 연신 꽃을 찾고 지저귄다. 텃밭에는 체리, 석류, 올리브, 베리류, 딸기, 참나물, 취나물, 곰취, 곤달비, 토끼풀, 비단풀, 개망초 등등 서로들 어우러져 자신의 위치를 점하고 어울려 산다. 난 간간이 죽지 않게끔 반그늘로 양지로 사토질로 옮겨주고 볏짚으로 멀칭을 해줄 뿐이다.

이제 겨울로 접어든다. 수련이 담겨 있는 돌소구유에는 살얼음이 보인다. 나뭇잎은 떨어져 모과가 확연히 보인다. 다들 다음해를 기다리며 떨켜는 나뭇잎을 떨구고, 겹겹이 쌓아 눈을 만들어 낸다. 올해 한 해 열심히 자라주었기에 더 깊이 많은 뿌리를 내리고 더 건강히 어우러져 살려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다하지만 조화 속에서의 성장이다.

자연의 모든 것에는 허상을 쫓는 과한 욕심은 없다.

10월 가을의 화사한 햇살을 즐길 수 있음은 과한 욕심 안 부리고 어울려 살았기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 생각한다. 참으로 멋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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