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 상실의 최저점 빙점
인간성 상실의 최저점 빙점
  • 이지수<청주중앙초 사서교사>
  • 승인 2016.10.3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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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지수

 세상을 살며 가장 이해할 수 없고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난 주저없이 `인간관계'라 대답할 것이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로 맞물려 살아가는 사회생활 속에서 맺게 되는 인간관계는 폭은 넓어지는 대신 깊이는 얕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인간관계가 가족에게 적용된다면? 이 문제는 훨씬 어렵고 복잡해진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당연히 이해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관계의 출발이 되는 것 같다. 오늘 쓰려고 하는 소설 `빙점(미우라 아야꼬·청목)'은 바로 완벽해 보이는 가족 구성원 간의 삐뚤어진 내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빙점'은 1964년 일본의 한 신문사 창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의 영예를 차지한 작품으로 원제목은 `원죄와 용서'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 결말은 해피엔딩을 연상케 하나, 결말에 이르는 그 숱한 과정 속에서 내면을 속인 가족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불행으로 치닫는다. 찰나의 불륜으로 어린 딸이 살해당하는 것을 막지 못한 아내, 아내의 불륜을 우연히 눈치 챈 남편은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돌리고, 그 아내를 속인 채 살인자의 딸을 키우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골자다.
 소설 속에는 잘잘못에 대해 토론을 한다면 끝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내의 입장과 남편의 입장이 잘 담겨 있다. 심지어는 아내의 내연남인 `무라이'의 처지에도 동정이 간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읽어야 했던 장면들은 역시나 살인자의 딸로 오해받으며 갖은 상처를 받아야 했던 어린 요오꼬일 것이다. 어른들은 각자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곗거리가 있었지만 요오꼬는 다르다.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어른들에게 돌아가며 냉대를 받았다.
 여기서 이 소설의 제목, 빙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빙점이란 결국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 최저점 온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진짜 살인자의 딸도 아닌 어린 요오꼬를 살인자의 딸이라 속이며 잘 키워보라고 했던 남편의 친구, 다까기씨의 말이 오랫동안 뇌리에 머문다.
 `원수를 사랑하라'를 일생의 모토로 삼겠다는 남편의 말과는 달리, 그는 정작 살인자도, 그의 아내도 아내의 내연남이자 자기 병원의 의사였던 무라이도 모두 용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진심을 속인 행동이 결국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불신을 자초하게 된 것 같다.
 사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와 용서란 행위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악인의 역할에 단순히 남편을 아니면 아내로 딱히 정해둘 수 없는 이유도 생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간성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소설에서의 화해의 물꼬가 `사실 요오꼬는 살인자의 딸이 아니었다.'라는 앎이라면 반대로 `요오꼬는 살인자의 딸이 맞다.'의 경우에도 가족들은 과연 전자와 똑같이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동안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요오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까? 소설은 소설이고 후자에서는 어쩌면 새드엔딩이 되었을 수도 있다.
 만약 후자라고 해도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며 인간성 상실에 이르는 과정도 그 누구보다 본인이 더 괴로움을 겪으며 선택한 길일 테니까. 그렇기에 다만 우리는 그 인간성 상실에 이르는 길을 걷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시야를 넓히고 남을 조금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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