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영루
산영루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10.3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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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산이 가장 아름다운 철은 언제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을을 꼽는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다. 낙엽이 쌓이고 울긋불긋 단풍이 든 가을 산이야말로 역대로 시인 묵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가을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산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서울 북쪽 울타리 노릇을 하는 북한산도 그 중 하나로 지목되어 왔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덕무(李德懋)는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두 명의 지인(知人)들과 삼 일간 북한산 안에 있는 열두 개의 사찰을 유람하고 돌아왔는데, 그때가 마침 가을이었다. 북한산의 가을 풍광에 매료된 그는 꿈속에 북한산이 나타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시 `산영루'는 이때의 감흥을 담은 것이다.

산영루(山映樓)

寒木深山動九秋(한목심산동구추) 차가운 숲 깊은 산 가을이 서렸는데
石橋東畔得高樓(석교동반득고루) 돌다리 동쪽 언덕 높은 누각 서 있네
漱泉已有翛然意(수천이유소연의) 샘물에 양치질하니 속세를 벗어난 듯
休向人間說此遊(휴향인간설차유) 이 같은 신선놀음 남에게 말하지 마소.



음력 9월이면 늦가을이다. 시인은 늦가을에 북한산을 찾은 것이다. 산속은 늦가을 찬 기운이 가득하였는데, 산이 깊어질수록 찬 기운이 더욱 심해졌다. 얼마쯤 갔을까? 돌다리가 나타나더니, 그 동쪽 언덕에 높은 누대가 보였는데, 말로만 듣던 산영루(山映樓)라는 누대였다.

누대가 들어서 있는 곳의 풍치는 그야말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그 자체였다. 사람 사는 세계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비경(秘境)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샘이 하나 있었고, 시인은 그 샘물을 떠서 양치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한 양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속세의 때를 벗겨 내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양치를 마치고 나자, 시인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신선이 거처하는 곳에 온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감동의 와중에도 시인의 장난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함께 간 일행들에게 신신당부하기를, 이곳 선경(仙境)에서 나가 사람 사는 곳으로 돌아가면 절대 여기서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이곳을 찾아와 보는 것이 싫고, 혼자만 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떤 것이다.

늦가을에는 산에 꼭 가보아야 한다. 낙엽 쌓이고 단풍이 물든 산속은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강력한 힐링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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