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는 곳
아버지가 사는 곳
  • 전현주<수필가>
  • 승인 2016.10.3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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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전현주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눈이 가장 많이 오는 곳에 사신다. 그곳의 눈은 한번 내렸다 하면 대부분 폭설이어서 한겨울에는 터널을 파고 다녀야 할 정도다. 10월 말쯤부터 오락가락한 눈은 온 천지에 벚꽃이 흐드러지기 전까지 계속된다. 여름에는 비도 거의 매일 내린다. 비 역시 쏟아지기 시작하면 쉬 그치지 않는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강으로 돼지 몇 마리가 둥둥 떠내려가야만 다시 볕이 난다.

날씨는 아버지와 나의 단골 이야기 소재다. 아버지는 변화무쌍한 기상상태를 시시각각 실감 나게 나에게 전하고 나는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인터넷이나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은 진실 여부를 즉시 확인해 보고 대충 맞장구를 쳐주면 되지만 예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먼 지방에 살면서 애를 태운 적도 많았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장난꾸러기였다. 어린 시절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TV를 보며 밥을 먹을 때 텔레비전에 정신을 빼앗기면 영락없이 밥그릇이 사라졌다. 상 밑을 살펴보고 밥상을 몇 바퀴 돌며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애써 모른 체하고 아버지는 오빠가 다 먹었다거나 개가 와서 물고 갔다는 등의 말로 기어이 눈물이 그렁그렁 고일 때까지 장난을 치셨다. 밥그릇은 다시 나타날 때도 눈 깜짝할 새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솜씨는 기가 막혔다.

게다가 아버지는 거짓말 대장이었다. 출퇴근이 불규칙해 뒤늦게 혼자 식사를 하실 때가 많았던 아버지의 밥상에 엄마는 꼭 달걀프라이를 올렸다. 우리는 윗목에서 장난을 치며 놀면서도 자꾸 밥상으로 눈길이 갔다. 아버지는 계란 요리가 싫다고 하셨다. 특히 달걀프라이는 비린내가 난다며 접시를 아예 밥상 구석으로 밀어 놓고 수저를 드셨다.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가 달걀프라이를 드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식사를 다 하시고 밥상을 쓰윽 밀어주시면 우리 삼 남매는 우르르 달려들어 달걀프라이를 나눠 먹었다. 나는 드시지도 않을 음식을 자꾸 해드리는 엄마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미간까지 찌푸리시며 입에 대지 않는 아버지는 더 이상했다. 바보처럼 그때는 정말 몰랐다.

어느새 팔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는 지금도 여전히 장난꾸러기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의 전화가 없는 날은 덜컥 겁이 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던 장난스러운 전화가 영영 안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자리까지 묵묵히 채워주신 아버지다. 갑자기 떠난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텅 빈 집으로 돌아오던 날. 부뚜막 위에 엄마가 쓰러지시기 전에 담가 놓으신 김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흘 만에 식초처럼 시어진 엄마의 마지막 김치로 모래알 같은 밥을 먹을 때도 아버지는 슬픈 얼굴을 보이지 않으셨다.

어제 아침에 아버지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면서 오래 묵은 근심거리를 털어놓으셨다. 놀란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걱정을 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또 속았다. 아버지는 평생 나를 헛갈리게 하셨다. 바쁘고 고단한 날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꾸해 드리기가 짜증 나고 귀찮을 때도 많았다.

며칠 새 부쩍 날씨가 쌀쌀해졌다. 아버지가 사는 거짓말 나라에는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나 보다. 올해는 첫눈이 온다는 장난 전화를 내가 먼저 걸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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