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10.30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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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취재 3팀장(부장)

참담한 요즘이다. 대한민국의 국정운영이 참담하고, 한국 문단의 현실이 참담하다. 각종 매체를 통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비정상적 정황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현실이라는 게 믿고 싶지 않다.

국가의 국정시스템이 한두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국격은 바닥에 내동이쳐졌다. 실체가 드러날수록 커지는 의혹은 국민에게 깊은 좌절감만 안겨주고 있다.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최순실의 행각은 이제 사생활까지 파헤쳐지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명품 구두 수백 켤레, 사모님들만 갈 수 있다는 목욕탕 내 사건, 독일 내 행적, 모 언론과의 인터뷰 장소 거짓 등은 다양해진 매체와 투명해진 정보유통의 성과이다. 하지만 007 첩보영화를 보는 듯한 개인의 망각된 행동에 초점을 맞춘 보도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게 할 우려가 크다.

언론도 국민도 냉정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는 사생활 보도로는 국정문제를 바로잡지 못한다. 물타기식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권력의 중심에 서서 국정을 농단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고 식물국가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가 있는가, 국민을 위한 정치는 있는가,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에 대한 성난 민심에 책임있게 응답을 해야 할 것이다.

최순실 사태로 큰 이슈에서 밀려나 있지만 유명 문인과 예술인들의 성추행 사실이 SNS로 고발되면서 문화예술계에 잇따른 성추행 파문이 터져 나오고 있다. 소설가, 시인, 큐레이터, 만화가, 작곡가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이미 김현 시인이 문단에 퍼져 있는 성추행 사건에 대해 말문을 열면서 파문이 일었다. 연장 선상에서 본다면 터질게 터졌다는 자탄의 소리가 나올 만큼 문화예술계 내 성추행은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문단에 권력이 생겨나고 갑을 관계가 단단해지면서 이런 사실을 알고도 쉬쉬하는 문화예술계 문화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성추행 사태를 수습하는 당사자들의 태도나 문단의 시선을 보면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얼마나 관대한지도 알 수 있다. 유명 작가를 선호하는 독자층과 문인 지망생들의 철부지 환상도 그들의 성추행을 부추겼다는 견해는 성추행과 성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성추행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문인들이 아직도 버젓이 교단과 문단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자 박범신 작가는 자신의 나이 탓으로 돌리며 사과했지만 여론은 등을 돌렸다. 더구나 이후 속속 밝혀지는 박 작가의 추행은 작가로서의 자질론도 의심케 하고 있다. 자유분방한 문화예술계에서 단순히 술자리 농담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작가의 추락은 결코 나이 탓만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시인들의 성추행·성폭행 사실도 충격을 안겨준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시인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 문단을 이끌 중견 세대들이다. 일부 시인들의 행적은 정상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상행동도 서슴지 않는 시인들의 행태는 지난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범인보다 나을 게 없다. 문제가 되자 사과와 함께 문단 활동을 접는 것으로 입장을 표명했지만 꼬리 감추기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추락한 문단의 위상보다 고매한 작가들의 정신세계가 훼손된 현실이 무겁다. 국정도 문단도 엄정한 심판의 잣대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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