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 일치
반대의 일치
  • 반영호<시인>
  • 승인 2016.10.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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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시간의 문앞에서
▲ 반영호

둥지 안에서만 지내던 새끼가 밖으로 나왔다. 세상을 접하는 첫 순간이다. 겁 많은 새끼는 수십 번 뛰어내릴까 말까를 망설이다 드디어 용기를 냈다. 이제 날아도 되겠다고 판단한 어미들은 새끼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다. 둥지 밖에서 불러내기를 수차례. 배가 고픈 새끼들은 어미의 먹이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뛰어내렸다. 일단 뛰어내리긴 했어도 다시 날아오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미들은 또다시 굶기기 작전을 쓴다. 먹이를 받아먹으려면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해야만 한다. 가장 낮은 가지인데도 쉽게 날아오르지 못했다. 뛰어내리는 일은 한 번에 되지만 날아오르는 것은 수십 번을 시도해도 번번이 떨어진다. 어린 것들의 시련이다.

둥지에서 뛰어내리는 순간부터는 수컷의 책임이다. 알을 낳고 품어 부화해 이만큼 자랄 때까지는 암컷이 해냈지만 이제부터는 수컷의 몫이다. 먹이는 것. 비행 등 고된 훈련이 시작된다. 수컷 어미는 낮은 곳의 나뭇가지를 정해놓고 새끼가 보는 앞에서 연실 오르내린다. 그리고 가지 위에서 먹이로 유인하는 것이다. 비행 연습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야 한다. 낮은 가지에 오르기가 능숙해지면 이번에는 더 높은 가지를 정한다. 역시 어미가 시범을 보이면 따라 한다. 비행 훈련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지친 새끼가 구석진 곳으로 피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우선 먹이를 주지 않고 야단치듯 짹짹거리며 계속 불러낸다. 새들에게는 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다. 날지 못하면 죽는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연습에 연습을 한다.

운동선수도 그렇다.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선 피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다. 재능도 있어야 하겠지만 고된 반복 훈련을 통하여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 그렇게 해도 실전에 나가면 실수하고 실패를 하게 된다. 누가 더 열심히 많은 훈련을 쌓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승리는 노력의 대가다.

비(非) 자를 보면 언 듯 다족을 가진 지네를 떠오르게 한다. 또 거미나 게, 가재를 연상하게 되고 어찌보면 노를 저어 움직이던 커다란 상선이나 거북선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런데 이 아닐 비의 상용 문자는 뜻밖에도 새의 좌우로 벌린 날개에서 따왔다고 한다. 비(非). 비는 잘못, 그름으로 쓰이는데 한자로 된 명사 앞에 붙여 잘못. 아님. 그름 따위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니다. 그르다. 나쁘다, 옳지 않다. 등지다, 배반하다. 어긋나다. 벌하다. 나무라다, 꾸짖다. 비방하다. 헐뜯다. 아닌가, 아니한가. 없다. 원망하다. 숨다. 거짓. 허물, 잘못. 사악 등인데 불(不)·부(否)·불(弗)·미(未)와 같이 부정적인 뜻이 있다.

비(非) 자에 대해 이어령은 어째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 날개가 그렇게 나쁜 뜻을 갖게 되었는가. 그것은 두 날개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오른쪽 하나는 왼쪽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새의 날개 죽지는 서로 등을 돌리거나 어긋난 모양을 뜻한다. 그래서 罪라는 글자에도 아닐 비 위에 눈 목자를 옆으로 뉘어서 눈으로 서로 반대방향을 보는 걸 뜻했나 보다.

우리가 싫어하는 비리(非理)라는 말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리에서 어긋난 서로 등을 돌린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도리(道理)가 아니라는 비리(非理)… 도리의 그 길이 날개모양으로 양방향으로 어긋나 있을 때 파탄이 생긴다. 이른바 반대의 일치라는 논리가 이 새날개의 논법이다. 이 어긋난 생각이나 행동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상호 보완작용을 할 때 새는 한쪽 방향을 향해 난다. 날개는 둘이라도 방향은 하나이다. 한쪽 날개는 오른쪽으로 또 한 날개는 왼쪽으로 제각기 자기 욕심대로 날려고 하면 그 새는 날지 못한다. 그렇다. 새는 날개가 둘이라야 비상(飛上)할 수 있다. 이상과 현실. 이성과 감성, 진보와 보수, 냉정과 열정. 비평과 용서, 이 평범한 진리를 새의 날개에서 터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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