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의 꿈
지리산 종주의 꿈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10.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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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새로운 꿈 하나가 생겼어요. 내년 봄에 지리산을 종주하는 꿈입니다. 에베레스트도, 킬리만자로도 아닌 고작 지리산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느냐고요? 그래요. 꿈 치고는 시시한 꿈일 수도 있고 산 좀 타는 사람들에게는 지리산 종주가 별거 아닐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게는 결코 만만한 꿈이 아닙니다. 어쩌면 중도에 포기해야 할 꿈인지도 모릅니다.

60대란 나이도 나이이지만 허리협착증이 있어 조금만 걸어도 다리와 발바닥이 저리고 아픈데다가 협심증이 있어 조금만 무리해도 몸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밤에 전깃불이 없으면 설설 기는 야맹증까지 있으니 야영을 해야 하는 고된 등정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리하려는 것은 학창시절부터 한 번쯤은 지리산 종주를 해봐야지 하면서도 여태껏 실행하지 못한 회한이 있어서이고, 더 늙으면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아니 망가진 몸으로부터 그로 인한 무기력과 나약함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입니다.

다행히 지리산 종주 경험이 많은 절친이 동반종주를 해줄 터이니 몸을 만들어보라고 해 용기를 내게 되었고, 친구가 일러준 대로 차근차근 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낙가산을 매일 오르내리는 일입니다. 낙가산은 483m 표고에 2.3㎞밖에 안 되는 작은 산이지만 급경사면이 많아 오르내리기 힘든 산입니다. 실전훈련에 제격이지요. 과부하가 걸릴까 봐 비교적 평탄한 김수녕양궁장 옆 숲공원 길을 30분 정도 걸어서 예열한 다음 올라갑니다.

강의나 외부 일정이 있어 산에 가지 못하는 날은 저녁식사 후에 영운천수변길을 따라 무심천 장평교까지 돌아오는 10㎞ 정도의 평탄길을 걷습니다.

처음에는 30분 걷는 것도 힘에 부쳤으나 날마다 이를 물고 걷고 또 걸었더니 내성이 생겨 지금은 3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내공이 쌓였습니다.

장족의 발전입니다.

그러나 지리산 종주는 언감생심입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적어도 하루에 7시간씩 3일을 걸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하여 다음 주 부터는 낙가산을 넘어 우암산 출렁다리를 지나 상당산성을 돌아오는 5시간 코스에 도전하려 합니다.

백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도전이고 여유입니다. 아니 백수가 주는 축복입니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며 대한민국의 허파입니다. 그래서 많은 청춘들이 지리산을 종주하며 호연지기를 키우려 합니다. 지리산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대한남아라 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 지리산에 병든 몸, 망가진 몸, 나이 든 몸으로 오르려 합니다. 호기일 수도, 객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겐 분명 꿈입니다.

꿈은 약속입니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걷고 또 걷습니다. 꿈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입니다. 꼼짝거리기 싫어하고 하릴없이 낮잠 자고 게으름피우던 백수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낮잠 잘 시간에 등산화를 질끈 동여매고 산을 오르내리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덕분에 체중도 줄고, 허리 통증도 줄어들고, 소화도 잘되고, 수면의 질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걷는 재미도 재미거니와 숲의 미세한 변화와 자신의 몸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며 걷는 즐거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여 오늘도 머리 허연 청춘은 굽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길을 나섭니다.

꿈이 주는 축복입니다.

하찮은 꿈일지라도 꿈을 이루기 위한 몸짓은 이처럼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아무쪼록 이 부실덩어리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내 지리산 종주기를 쓸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오늘도 산새 노래 들으며 그대 꿈을 응원합니다.

/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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