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극단에서 진정성 찾기
개헌, 극단에서 진정성 찾기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6.10.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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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토질이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못생겼다 욕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中> 기습적인 개헌 제안 소식을 듣고 느닷없이 생각나는 시 구절의 상관관계를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런 연상 작용이 황당한 것인지, 굳건히 지켜왔던 상황의 창졸지간의 변화가 어리둥절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헌법은 국가라는 체제를 완성하기 위한 절대적 테두리이다. 제헌절이 일부에서 소위 말하는 `건국절'보다 앞서 있음은 대한민국이 헌법에 의해 통치되는 민주공화정의 국가 정체성과 이념을 먼저 갖추었음을 뜻한다.

물론 개헌의 필요성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습하듯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의 의지를 내세운 것을 `카드'로 읽지 않을 도리는 별로 없다. 거기에 진정성이 있다고 믿을 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의심스러운데, 이게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차라리 기우(杞憂)였으면 싶다.

“임기 내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국민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개헌 의지의 핵심 표현이다.

당장 올해 초 신년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도 `블랙홀'로 표현했던 개헌 논의에 대한 일축이 갑자기 변한 까닭은 무엇인가. 불과 1년 4개월 남짓 남은 기간의 한계에서 순수성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 내 조직을 만들어'의 대목에 이르면 전 근대적 상의하달의 냄새를 지울 수 없다.

모든 것이 `극단'이다.

극단의 세계에서는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여유는 더더욱 누릴 수 없다. 즐거움과 여유가 없는 사회는 불안하다. 불안한 삶이 지속하는 사회에서는 공동체라는 인식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 어렵고, 그 어려움은 충성심 대신 각자도생이라는 또 다른 극단을 기어이 만들면서 진정성을 무력하게 만들고 만다.

느닷없는 개헌 제안에도 대다수 국민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현행 헌법 1조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개헌을 위해 범정부기구가 꾸려지기는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 주도의 개헌 논의에 대해 주권 국민이 홀대받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혹시 `구부러진 나무'와 `토질이 나쁜 땅'의 극단적 척박함끼리만 야합하는 건 아닌지.

브레히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는 이렇게 흐른다.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토질이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어부들의 찢겨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왜 나는 자꾸/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이야기하는가?/<중략> /그러나 바로 두 번째의 것이/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극단 대신 진정성을 찾는 일. 기왕의 개헌논의에서 `카드'대신 `희망'을 찾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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