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친구에게
가을밤 친구에게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10.2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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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차갑고 쓸쓸한 가을밤의 정서는 단연 그리움일 것이다. 고향, 가족, 친구와 멀리 떨어져 홀로 지내는 사람이라면 그리움에 가을밤을 쉽게 잠들 수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어떤 사람은 잠자리에서 뒤척이기를 반복하면서 새벽을 맞고, 또 어떤 사람은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와 밤을 산책한다. 불면(不眠)에 대처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바탕에 그리움이 깔려있는 것은 동일하다. 당(唐)의 시인 위응물(韋應物)도 어느 가을밤 누군가가 그리워 잠 못 들고 있었다.

 

가을밤에 친구에게(秋夜寄丘二十二員外)

懷君屬秋夜(회군속추야) : 때마침 가을 밤 그대가 그리워서
散步詠凉天(산보영양천) : 서늘한 하늘 아래서 시 읊으며 거닌다오
山空松子落(산공송자락) : 빈산,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幽人應未眠(유인응미면) : 은거하는 그대 또한 잠 못 이루겠지요?


가을이 오고 또 밤이 찾아오자 시인은 불현듯 친구가 그리워졌다. 그리움은 잠시 있다가 떠나지 않고 계속 시인의 뇌리에 머물고 있었다.

도저히 그리움을 떨쳐버릴 수 없던 시인은 집 밖으로 나서서 밤길을 무작정 걷기 시작하였다.

가을이고 밤인지라, 날씨는 차가웠다.

시인은 친구 그리움에 길을 나섰다가, 가을밤의 정취에 젖어 시를 읊조리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같은 시간,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여졌다.

그때 친구는 마침 깊은 산 속에서 홀로 은거하고 있던 터였다. 깊은 산 속이라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을 테고 더구나 때가 가을밤이라 적막하기 그지없을 것임은 분명하였다.

아무리 세속의 번다함을 피해 깊은 산 속에서 홀로 사는 은자(隱者)라 할지라도 적적하고 고요한 가을밤을 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툭 떨어지는 솔방울 소리는 깊은 산 속의 정적을 깨면서 은거하는 사람을 찾아온 반가운 벗일 것이다.

그런데 이 반가운 솔방울 소리에 친구가 잠 못 들 것이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시끄러워서일까? 낮에는 잘 들리지도 않았을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모든 것이 고요한 밤에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잠 못 든다고 하는 것은 어색하다. 그 솔방울 소리는 언젠가 친구와 같이 들었던 공감의 소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불현듯 친구가 그리워질 것이고, 그리움에 잠 못 이루는 것이리라.

가을밤은 그리움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그래서 잠 못 이루기 일쑤이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는 없다. 그리움은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귀중한 존재이기에.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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