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돼야 할 `이례적' 일들
일상이 돼야 할 `이례적' 일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10.23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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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사전을 찾아보니 `이례적(異例的)'은 `보통의 경우와 다른 특이한'으로 풀이된다. 이런 이례적인 일들이 언론에 연일 터져나오며 이런저런 의혹의 단초로 적시되고 있다. 이례적인 일들이 거듭될수록 의혹에 살이 보태지고 실체를 드러내다 보니 이례적인 건을 찾아내 역추적하는 것이 요즘 언론의 취재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이례적인 일이 없어져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푸념까지 나온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지금 터져나오는 이례적인 일들이 이례적인 일이 돼서는 안될 일들이라는 점에 있다.

19개 대기업이 전경련을 통해 800억원 가까이를 거둬 `K스포츠'와 `미르'라는 공익법인을 만들었다. 이게 이례적인 사건으로 몰렸다. 수조에서 수십조원씩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상생과 공익에는 인색했던 전력에 비춰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본이 지긋지긋했던 위안부문제를 불가역적으로 덮어버리는데 들인 10억엔의 8배나 되는 거금을, 100% 자발적으로 모았다는 것은 완벽하게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막강한 전경련도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대 권력의 개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이 민원인에게 베푼 눈물겨운 봉사는 공직의 모범사례가 되는데 실패했다. 이례적인 케이스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전경련으로부터 두 단체의 법인등록 신청을 받은 문체부 세종청사 주무관은 직접 서울로 출장가 서류를 접수했다. 이 때가 오후 5시. 그는 서울 사무실로 달려가 내부 시스템에 등록했고 세종청사에서 대기하던 간부들이 8시 30분쯤 원격 결재했다. 윗선의 결재를 거쳐 등록이 완료된 시간은 다음날 오전 9시 36분. 보통 1주일 정도가 걸린다는 민원절차가 퇴근을 반납한 야간 특공작전 덕분에 13시간 29분만에 끝났다. 그러나 이들의 헌신은 상부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사례로 지적돼 청와대 개입설을 뒷받침하는 단서에 그치고 말았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농민 백남기씨가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된 날은 휴일인 주말 오후 7시 40분이었다. 혼수상태의 백씨를 진단한 응급실 의료진은 수술을 해도 생존이 어렵다는 비관적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밤 10시 30분 휴일을 보내던 신경외과 과장이 등산복 차림으로 병원에 나타났다. 환자를 살핀 그는 직접 수술을 집도했다. 언론에 따르면 그는 그동안 1000여 차례의 수술에 참여했지만 휴일날 나와 당직의사를 제치고 집도하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해서 이 미담조차도 이례적인 일이 돼버렸다. 그는 지침과 관행에도 불구하고 굳이 백남기씨의 사망증명서에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적게하고, 그 소신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경찰의 요청을 받고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사태에 개입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있다.

한 대학생이 과제물을 교수가 정한 시한보다 (아주)늦게 제출했다. 게다가 첨부해야 할 파일까지도 빠트렸다. 그리곤 늦어서 미안하다는 메일을 교수에게 보냈는데 교수의 답장이 더없이 정중하다. “앗! 첨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못을 꾸짓기는커녕 되레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를 내줘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듯한 투다. 이런 자애로운 스승을 둔 행운아는 최순실씨의 딸이다. 사제간 갑을관계가 엄연한 우리 대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이례적인 일로 지목됐고 학문의 장이 권력에 오염됐다는 의혹을 초래한 빌미가 됐다.

번 돈을 적정한 수준에서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양심적 기업인, 국민과 민원인을 위해 출장과 야근도 불사하는 무한봉사의 공직자, 위급한 환자가 생기면 휴일날 집에서 자다가도 뛰어나오는 의사, 제자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실수까지도 관대하게 보듬는 교수. 상상만 해도 더불어 행복한 사회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나 딱하게도 이들이 매우 희귀한 사례로 꼽혀 비리와 불법의 시발점으로 의심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례적이어서는 안될 일들을 일상적인 일로 되돌리는 것. 어쩌면 이례적인 일들로 인해 드러난 의혹들을 규명하고 바로잡는 것보다 급한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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