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봄눈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10.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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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까맣게 잊고 있던 동요 한 곡을 열심히 부른 날이었습니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개관식이 열리고 있던 곳 바깥에선 마침 선선한 가을바람이 축하의 트럼펫이라도 들려주는 것처럼 시원하게 불고 있었지요.

지난 9월 24일 충북 청주 낭성의 호정리에서 책과 사람과 자연을 담은 생태자연도서관 `봄눈'이 세상을 향해 활짝 문을 연 것입니다.

옆 사람과 햇빛, 바람, 나무, 새 등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개관식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고, 곽은득 땡스 하우스 대표는 자전거와 도서관과 시(詩)를 가까이해야만 현대의 소외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전하더군요.

축사를 맡았던 오혜자 초롱이네도서관장은 축하한다라는 말 대신에 고맙다라는 말을 하며 “검색에서 사색으로!” 방향을 옮기자는 요청을 했고,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오지 못한 홍순명 밝맑도서관장은 이메일로 보낸 격려사에서 `봄눈'의 백영기 관장을 가리켜 목사(牧師)인지 목수(木手)인지 모를 이상한 분이라고 언급해서 웃음을 자아내게 했지요. 마을 인사라는 순서에선 새마을 지도자 한 분이 나와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에 대해 강조를 했고, 조희선 시인은 “봄눈”이란 자작시를 담담하게 낭송했습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처럼, 곱게 핀 꽃에 다가와 그의 존재를 사랑한 바람처럼, 여기에 그대의 마음을 부어 주셨습니다. 님은 생태자연도서관 `봄눈'이 세워지기까지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고마움과 사랑을 함께 간직하고자 이 패에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아 드립니다.” 몇 분들에게 전달된 감사패의 문구는 형식적이지 않았죠.

경과보고에 나선 김성구 도서관운영위원장은 도서관의 주인은 앞으로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용자가 돼야 한다는 고민스러운 속내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의 설립 과정을 줄여서 담아 소개한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나온 홍순관의 `쌀 한 톨의 무게'는 2005년 도서관 부지를 구입한 이후 완공까지 걸렸던 11년 동안의 땀과 눈물의 알찬 무게를 짐작하게 했습니다. 마침의 노래로 함께 부른 `터'라는 한돌의 노래는 “우리의 숨소리로 이 터를 지켜 나가자”라는 소원을 굳게 다지게 했습니다.

개관식을 마치고 연결된 예술공장 두레 오세란 이사장의 춤은 생명과 평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연과의 교감(交感)을 잔잔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도서관 앞문에 걸렸던 현판의 문구도 따로 옮기지 않을 수 없군요. “착심독서(着心讀書) 불작한열(不作寒熱). 독서에 마음을 붙여야만 가슴속에서 추위와 더위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국밥도 맛있게 먹었답니다. 눈 마주치며 손님들을 찬찬히 챙기고서는 도서관 입구의 구석진 곳에 쪼그려 앉아 뒤늦은 국밥을 즐겁게 들던 백영기 관장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군요.

잔칫집 분위기는 흥을 더했고, 저녁으로 이어진 박총 신비와저항 수도원장의 기념 강연은 또 하나의 얘깃거리가 되고도 남았습니다. “우주란 신이 쓴 하나의 거대한 책이며, 모든 곳은 도서관이다.”

두고두고 보아도 `봄눈'이란 도서관의 이름이 참 정겹게 다가옵니다. 부디 이곳이 풀이나 나무의 싹이 막 터져 돋아나는 자리처럼 되길, 또한 나뭇가지에 눈이 트는 봄처럼 고맙고 좋은 시간을 많은 분과 함께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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