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조절에 대하여
분노조절에 대하여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10.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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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분노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의 화신인 예수님마저도 성전을 장사판으로 만든 상인들에게 불같이 분노했으니까요.

정의롭고 거룩한 분노는 사회와 국가와 인류를 발전시키는 에너지가 되지만 조건반사적인 분노는 자칫하면 자신과 공동체를 피폐케 하는 악성바이러스가 됩니다.

요즘 분노조절이 잘 안 되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사회가 매우 불안하고 우울합니다.

대한정신건강의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절반이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으며, 이 중 10%는 치료가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열 받을 일이 하도 많은 세상이니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욕설이나 멱살잡이로 끝날 주차시비와 보복운전, 층간소음이 요즘은 툭하면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니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언제ㆍ어디서 또 누가 어처구니없는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를지 모르는 조마조마하고 위태위태한 세상입니다.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와 일등지상주의에 매몰된 군상들의 일탈행위이나, 이런 분노범죄는 사회구조적 부조리나 타락한 권력의 부당함에서 오는 분노보다 사회적 약자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다는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분노해야 할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안다고 하더라도 맞설 용기가 없어서입니다. 분노조절 장치에 장애가 생긴 거죠.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들의 대부분은 부당하게 많은 돈을 가진 자와, 불의한 권력자들에 대한 분노와 응징을 그렸고, 관객은 거기에 대리만족했습니다. 공분이거나 공분에 가까운 분노이지요.

모든 공분이 의로운 것은 아니지만 부당함에 대한 집단적 분노는 그 사회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보복운전 같은 분노는 개인적 화풀이이고 앙갚음일 뿐입니다. 이런 분노야말로 마땅히 공분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보복운전 심리의 기저에는 `네가 뭔데 날 무시해', `건방지게 어따 대고 ㅈㄹ이야', `좋아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볼래' 하는 지기 싫어하는 심리와 자신의 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비뚤어진 심리상태에 기인합니다.

아무튼 화가 나거나 분노하면 사람들은 위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험한 말과 행동을 하고, 심지어 방화나 폭력ㆍ살인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노는 질투나 두려움, 원한 등 여러 가지 원인에서 시작되지만, 가까운 이웃이나 동료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불행의 단초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화를 참는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은 화는 스트레스가 되어 병을 부르고, 이런 억압된 분노가 끔찍한 묻지 마 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화와 분노를 직접 표출하는 것을 무례한ㆍ저급한 행동으로 간주했고, 아무렇게나 화를 내는 것을 아주 천한 행동으로 경멸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상류사회에서도 자제심과 극기를 군자의 마땅한 도리로 삼았으니까요.

분노하되 분노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것은 상대가 나를 화나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충분히 수양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령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평온하고 차분하게 대처하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예쁜 사람도 화내고 찡그리면 무섭고 밉습니다.

분노는 남도 태우지만 자신을 먼저 태우는 무서운 불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로 감정을 쏟아내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 즉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게 바로 인격수양이고 내공입니다.

짜증 나고 화나는 일이 많아 속이 부글부글 타는데 예수님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대라고 하십니다. 분노조절의 극치이지요.

오늘도 그대의 평화를 빕니다.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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