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선생님과의 이별
-박재용 선생님 영전에
존경하는 선생님과의 이별
-박재용 선생님 영전에
  • 임찬순<시인·극작가>
  • 승인 2016.10.18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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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임찬순<시인·극작가>

`하늘로부터 생명을 받아 삶의 발자국을 남기고, 어느 날 하루 문득 떠나는 인생의 덧없음이여'라는 옛 시인의 노래처럼 그렇게 선생님도 어느 날 하루 문득 떠나십니까. 참으로 슬픕니다. 그러나 슬픔은 남은 자의 몫이라 합니다.

또 그러나 선생님의 인생은 덧없음과는 크고 완벽하게 대치되는, 저희에게는 더없이 아름답고 긍지 놓은 사표였습니다.

나라는 무너지고 민족은 잔혹하게 탄압받던 시대. 언어를 빼앗기고 젊은이들은 총알받이로 전쟁터에 끌려갔던 일제 그 치욕과 죽음의 터널을 온몸으로 아프게 살았던 세대. 그 위에 덮친 혼란했던 해방공간 조국은 분단되고 마침내 참담했던 6.25를 겪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전후의 폐허 가운데서 선생님은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가 당선되고, 다음해에 같은 신문에 신동문 선생님의 시가 당선되어 우리 고장에 문학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 횃불은 들불처럼 번져 청주에 문단이 형성되고 드디어 청주문인협회 충북 예총이 세워졌습니다. 1956년 당시 고등학생들의 문학단체인 푸른문 동인 활동 중 저는 신동문, 민병산, 이설우, 최병준 선생님들과 운명적인 인연을 맺고 담임 선생님처럼 존경하고 한껏 공손하게 모셨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들이 살아온 날들이 곧장 민족의 아픔이고 한이고 역사의 흔적이어서 저희에게는 산 교훈이었고 가르침이고 강렬한 의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애석하게 그분들 모두 타계하시고 선생님마저 떠나시니 그 슬픔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선구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선친은 한말이던가 서울 중앙학교(현 중앙고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일찍이 개화된 시대의 선구자셨고 선생님의 형제분은 모두 경기고보를, 손위 누님은 경기고녀 출신의 수재들이었습니다. 형님은 대학교수로 평생을 교육에 바치셨고 선생님은 도교육청 장학사로, 교육원장으로, 중앙여고 교장 등으로 헌신하셨습니다. 거목처럼 우아하고 늠름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한결같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깔끔하고 깨끗하게 글 읽는 선비로 글 쓰는 작가로 89세 생애를 마치시며 장남 세만(전 KBS 보도국)을 비롯해 4남 1녀를 두시고 의사 등 모두 사회의 훌륭한 인재로 키워내셨으니 무거운 짐은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또 1955년 조선일보에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 2014년 청오회 동인지 돌체시대에 게재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이 남긴 문학은 후배 문인들에게 모범을 보인 표본이므로 더욱 그렇습니다.

청주에서 50년대 문학을 통해 만난 모임 청오회에서 매달 산 역사의 증인들을 대하는 경건함과 기쁨을 오래도록 누려오다가 갑작스럽게 저희들 곁을 떠나시니 어찌 황망하고 목이 메지 않겠습니까.

문득 윤동주의 시가 선생님의 목소리로 가슴에 차오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선생님 편히 진실로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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