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대학 총장이 그립다
자랑스러운 대학 총장이 그립다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6.10.18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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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조한필 부국장(내포)

오늘 이화여대 교수와 학생들이 최경희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선다. 권력형 의혹이 있는 최순실씨의 딸을 입학시키고, 학점도 쉽게 받게 하는 등 특혜를 줬다는 이유에서다.

교수비상대책위는 지난 15일 “입학·학사관리 관련 의혹 보도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지만 학교 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는커녕 옹색하고 진실과 거리가 먼 변명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다. 또 “이화여대 추락의 핵심에는 최 총장의 독단과 불통, 재단의 무능과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은 오늘 집회 이후 이달 말까지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이화여대는 지난 7월엔 결국 포기한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 사업으로 학내 갈등을 겪기도 했다. 명문대학이 이처럼 불미스런 사태를 연속 겪고 있다. 아무리 일부 교수와 학생의 퇴진 요구라 할지라도 총장으로선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 총장의 불명예는 학교의 명예 추락으로 직결돼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31년 전 이와 반대로 학생들로부터 사퇴 철회 요구를 받은 총장이 있었다. 1985년 2월 25일 고려대 운동장 졸업식이 열리는 자리였다. 김준엽 총장(당시 65세·1920~2011)이 전두환 정권의 압력 때문에 사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교기와 피켓을 앞세우고 “총장님, 기운 내세요”, “총장님 뒤를 따르겠습니다”를 외쳤다. 피켓에는 “굴욕적인 총장사퇴 결사반대!”, “10만 고대인의 피끓는 의지로 대학의 관제화를 분쇄하자!” 등이 쓰여 있었다. 당시 군부정권 아래 대학마다 어용총장, 무능총장 물러가라는 시위가 빈발했는데 총장사퇴를 반대하는 시위는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김 전 총장은 이렇게 당시를 회고했다. “학생들의 퇴진반대 시위는 독재정권이 내게 준 훈장이며 내 인생 최고의 명예였다.” 퇴진 이후 그는 여러 정권의 유혹을 받았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그를 국무총리로 모시려 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그는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며 굽실거리는 풍토를 바꾸기 위해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1982년 7월 총장직을 맡으면서 가족에게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나는 절대 굴욕적인 총장은 될 수 없다. 총장의 자리에 연연해서 앞으로 관계(官界)라도 들어갈 생각을 하면서 정부에 아부하는 따위의 행동은 일절 하지 않겠다.” 직전 김상협 총장이 국무총리로 나가면서 학교 명예를 실추시킨 걸 염두에 둔 약속인 듯하다.

그가 물러난 이유는 시위에 참가한 학생 80여명을 제적시키라는 정부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기 때문이다. 학생을 못 지킨다면 총장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총장은 대학의 얼굴이다. 그 대학의 교수·재학생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졸업생의 명예다. 총장이 대학의 명예를 떨어뜨려선 안 된다.

지금, 옛 은사 김준엽을 떠올린 건 그의 학문적 업적 때문이 아니다. 어디도 꿀리지 않는 호연한 자세가 그리워서다.

1981년 봄, 사학과 학생들이 회갑을 넘긴 그를 모시고 호남 답사에 나선 적이 있다. 해남 대흥사의 유선여관으로 기억한다. 막 부임한 젊은 교수님께 `신고식'을 받았다. 큰 대접 담은 막걸리를 권했다. 다른 교수들이 “교수가 학생에게 신고식을 한 전례는 없었다”며 말렸다. 그러자 김 교수가 말했다. “나는 30여년 전 이 대학에 오면서 큰 동이 술로 신고했다.” 그러자 주위가 잠잠해지고 신임 교수는 막걸리를 들이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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