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탓인가?
가을 탓인가?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10.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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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시월이 시작되는 이맘때는 공연히 심란해져서 자주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내 안 어디쯤엔가 괸 물, 정체된 사고를 시월이 깨우는 것일까. 가을 탓인가?

수조에 오염된 물을 퍼내고 새 물로 채우면 명경 같았다. 힘겨운 노동 뒤에 얻은 결실의 기쁨 같아서 뿌듯했다. 일찌감치 철든 붉은 잎이 내려앉으면 수조는 나룻배 떠다니는 작은 호수가 되었다, 벚나무 잎이 모두 붉어지면 호수도 붉게 물이 들었다. 작은 새가 그 물을 쪼아대다 어느결에 붉은 물이 들고, 지나던 구름이 제 모습에 흠칫하는, 작은 호수는 온통 붉은 가을을 닮아있었다.

이렇듯 살아있는 모든 것이 한 걸음 내디딜 때는 다 써버린 한 장을 훌쩍 넘기고 다시 하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호수가 맑아지면 손님이 찾아들었다. 게아재비가 와서 촐랑거리면 잔물결이 일고 아이들이 손으로 휘저으면 풍파가 일었다. 물이끼가 끼고 바닥에 건더기가 한 움큼 차이기 전에 아이들이 물통을 분주하게 들고 날랐다.

우리는 교무실 옆에 화재 대비로 놓은 수조에 당번을 정해놓고 물갈이를 했다. 수조는 물을 포용 할 수 있을지언정 다스리는 법은 모른다. 물도 그 안에서는 자정작용을 할 수가 없다. 가끔 빗물이 섞이면 맑은 척하다가 도로 더러워지는데 괸 물은 계기를 만나지 못하면 악취가 풍긴다.

그 작은 호수에 아이들이 물길이 되어 주었다. 우물물을 길어다 채우기란 쉽지 않았다. 한참 떨어진 우물가에서 헉헉거리며 들고 오다 보면 물은 반으로 줄었다. 거기에다 장난삼아 내달리면 들통이 뒤집어지는 것도 예사였다. 우물가에서 소복 입은 처녀 귀신을 보았다는 괴담이 들릴 때는 긴 머리를 풀고 우물 속에서 올려다볼 것 같아 근처에 가는 것도, 두레박을 잡는 것도 오싹했다.

다시 내 차례가 왔다. 한 번만 더 헹구어 내고 새 물을 담았으면 얼음 알처럼 맑은 호수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만 하자고 나섰다. 친구들이 뜨악해하는데도 우겨서 들통의 물을 부었다. 부연 느낌은 있지만 맑은 물을 붓다 보면 깨끗해질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물을 가득 채웠더니 화학적 실험을 하지 않는 이상 맑은 물이었다. 구정물이 시나브로 맑은 물에 동화되어버린 것이다. 불순한 분자의 환탈이라고 해도 좋겠다. 물은 맑은데 없어도 좋을 까락 같은 것이 떠다녔다. 고집을 부린 것이 겸연쩍었다.

그것은 물을 더 빨리 오염시킬 이유가 되고도 남았다. 내 안 어딘가에 괴어 있다가 점점 확장해 갈지도 모르는 침체한 사고 같은 것이다. 괸 물은 썩는다는 과학적 이론은 선생님께, 인생의 진리라는 것은 살면서 깨쳤다.

수조가 맑은 이유는 선생님과 약속으로 주어진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나와의 약속, 사회와 약속으로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아니 나는 흐르는 물인가, 괸 물인가... 나도 나를 모르는데 시월은 벌써 저만치 간다.

구태의연한 나를 깨운 것은 시월이지만 가슴을 이리 요동쳐 아프게 하는 것은 필시 가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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