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평호
초평호
  • 박경희<수필가>
  • 승인 2016.10.1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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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박경희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레전드(Legend), 즉 전설이 된다. 전설이 되는 이야기들은 경탄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거나, 신성하게 여겨졌으면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진천 초평호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일본강점기인 1942년 처음 계획된 이후 미국의 협조를 받아 1958년 원래의 초평저수지 둑이 만들어졌으니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함께 한 셈이다.

그런 초평호를 소개하면서 당당하게 거론되는 것은 상상 속의 동물 `용'이다. 자연적으로 흐르던 물길을 20세기에 들어선 뒤에야 사람의 손으로 막아 놓고 그 모습이 `용'을 닮았다고 하니 사람들의 상상력은 역시 무한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평호는 하늘을 나는 새가 보면 기겁을 하기도 할 만큼 용의 모습과 빼닮았다. 게다가 두타산 전망대에서 초평호를 내려다보면 용의 힘찬 비상이 한반도 닮은 지형을 감싸 안아 보호하는 듯한 형국을 띠고 있으니 어찌 상서로운 기운이 아니겠는가.

초평호는 원래 인근 드넓은 곡창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빠르게 진입되면서 진천 역시 농공단지를 비롯한 수많은 공장이 들어섰고, 당연히 초평호 역시 단순한 농업용 저수지에서 레저를 중심으로 하는 여가활동의 장소로 주목받고 있으니 저수지의 역사가 곧 사람의 세상사는 이치와 제법 맞아떨어진다.

거기에는 또 이런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지금의 초롱길 정상 부근 살고개(용고개라고도 한다)에는 원래 화산마을이라는 부자마을이 있었다.

그 옛날 한 스님이 그 마을에 시주를 청하러 왔으나 마을 사람들이 냉대하자 살고개에 길을 뚫으면 더 큰 부자마을이 된다고 하여, 길을 내다보니 산허리에서 피가 흐르더란다.

마을 사람의 푸대접을 괘씸하게 여긴 스님이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상처를 내도록 해 결국 마을의 정기가 끊어져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인데, 스님의 행보도 그렇지만 더 큰 재물을 탐하던 마을 사람들의 심보 역시 한이 없다.

지금 초평호는 짜릿한 손맛을 노리는 낚시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깊고 평온한 모습으로 산세와 어우러지면서 진천 관광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곳을 찾는 낚시꾼들을 위한 수상 방갈로가 떠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여름이면 래프팅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환호성이 축포처럼 터진다. 진천청소년수련원에서 초평호를 거쳐 농다리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 참 편한데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호수와 산이 접하는 곳에 길을 만들어 물 위에 비치는 산 그림자를 보면서 걷다 보면 계절마다 별유천지 비인간의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그 길의 이름은 초롱길. 하늘 다리를 건너 만나는 그 길의 이름이 초롱길로 정해진 것은 초평호와 농다리에서 한 글자씩 각자한 듯한데, 마치 하늘길을 등불을 들고 오르는 신선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늘길은 초평호를 가로지르며 사람의 발걸음마다 반응하며 제멋대로 흔들리면서 하늘의 이치와 자연, 그리고 인간이 서로 느끼는 감응의 기쁨 역시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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