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가장 큰 열전을
냉전시대 가장 큰 열전을
  • 박숙희<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6.10.16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박숙희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직지」상권 스무 일곱 번째 이야기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스님의 또 다른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마조 스님께서는 “도는 닦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오염시키지 말 것이니라. 어째서 오염이 되었느냐? 다만 생사의 마음이 있어서 조작하고 취향 하는 것이 모두 이 오염이다. 만약에 그 도를 알고자 할진댄 평상심이 이 도이다. 어떤 것을 평상심이라고 말하느냐? 조작과 옳고 그른 것이 없으며, 취하고 버리는 것 그리고 단견과 상견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도 없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범부의 행도 아니며 성현의 행도 아닌 것이 바로 이 보살행이라'하셨느니라 .”

도는 닦아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一言之下 頓忘生死(일언지하 돈망생사)'하고 돈오하는 것이 도에 들어가는 가장 표본이다. 마조 스님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닦으면 되는 줄 알고 좌선만 붙잡아놓고 하니까 남악 회양 스님이 그 앞에서 벽돌을 갈았단다. 그것을 보고 마조가 깨우쳤다고 한다. 닦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만 오염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법. 본래 순수하고 본래 청정한 것이 도의 자리이고 본래의 마음자리기 때문에 닦으려고 조작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오염시키지 않고 본래 청정하고 순수하고 깨끗한 그대로만 간직하면 된다는 것 아니겠는지.

깨닫는 것도 여러 번 깨쳐야지 한 번 깨쳐서 될 문제도 아니라는 것. 밥을 한 숟가락 먹어서 안 되는 것과 같이 사람의 근기에 따라서 한 번 깨쳐서 단박에 다 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두 번, 세 번 여러 번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 여름밤에 부나비들은 불을 켜놓으면 불 속으로 취향하여 불에 투신자살해서 생명을 잃게 된다. 부나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다 욕계, 색계에 죽어도 좋다고 기를 쓰고 부나비들이 불 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뛰어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造作趣向(조작취향)이라는 것이겠다.

이는 도를 닦는 사람은 첫째 구하는 마음 없이 닦아야 한다는 것. 마음은 비우고 생각과 몸을 다 놓아버려야 한다는 것. 그래서 지혜가 없는 사람이 도를 닦는 것은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지으려고 하는 것과 같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 수행하는 것은 쌀로 밥을 짓는 것과 같은 것이란다.

도 닦는 사람은 마음에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 아니겠는지. 주위환경이 좋지 않으면 불평불만을 많이 한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못하면 그것을 비판해도 불평불만을 갖는 마음에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대표적 좌파 역사가인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라는 책에서 냉전 시대를 인류가 토지 생산력에서 벗어나 산업화를 통해 가장 큰 경제성장을 이룩한 `황금시대'로 평가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평가가 가장 잘 맞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냉전 시대 가장 큰 열전을 치른 남한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근대화를 성취한 것은 기적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대결을 벌이는 신냉전은 우리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개발 때문이 아니던가. `부나비처럼 造作趣向(조작취향)'않으려면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