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여행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 이영숙<시인>
  • 승인 2016.10.1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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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

연휴가 긴 어느 날 4박 5일의 일정으로 중국 태항대협곡 여행에 올랐다. 남편과는 처음 동행하는 외국여행이다. 평소 방학도 없이 진군해온 터라 심신이 많이 피로해 극기 훈련 차 선택한 트레킹 코스다.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태항대협곡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협곡 중의 하나다. 몽고초원 아래 산서성 북부에서 시작하여, 산서성과 하북성 하남성 경계에 남북으로

600여㎣ 동서로 250여㎣에 달하는 광대한 곳이다. 베이징, 허베이, 샨시, 허난 4개의 성에 걸쳐 있으며 봉우리와 폭포, 협곡의 웅장함이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연상케 한다.

북방의 계림이라 불리는 화룡천계산, 태항산의 축소판인 구련산, 태항산맥의 대형폭포인 천호폭포, 협곡길이만 4㎣를 이루는 만선산, 태항산맥의 정점으로 엄동설한에도 복숭아꽃이 핀다는 도화곡(逃花谷)을 지나면 산세가 험준한 깊은 골짜기에 있는 왕상암(王相岩)에 이른다. 협곡의 절벽을 깎아 만든 계단을 따라 걸으며 천상과 이어진 듯한 벼랑의 폭포들을 만나기도 하고 도화곡에서 왕상암까지의 25㎣ 되는 태항천로는 높이가 1200m나 되는 절벽의 가장자리를 빵차라고 하는 전동차를 이동하며 감상한다.

때로는 엘리베이터와 수직계단, 집라인, 고공케이블카를 이용하며 천상과 천하를 오르내리던 아찔한 곡예들이 마치 갓 입대한 군 초년병의 극기 훈련이다. 모두가 `와~'하고 탄성을 자아낼 무렵 협곡 줄기에 불가사의한 길을 낸 뒤안길이 떠오른다. 이 길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형수들이나 강제 징집된 무고한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아찔한 낭떠러지와 갓길 옆에서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소름이 돋는다.

미니전동차로 벼랑의 갓길을 달리는 동안 눈에 띈 소수민족들의 주거지가 아직도 뇌리에 아슴하다. 버려진 폐가들과 주 농작물이 옥수수인 산촌, 전동차 안 우리를 향하여 싱긋 미소를 지어주던 순박한 산촌민들, 그들의 고단한 재래식 노동이 협곡처럼 구불댄다.

하루 3만5000보를 넘는 트레킹으로 강행군한 이번 여행은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내겐 큰 도전이었고 그 난코스를 낙오 없이 해낸 자기 극복의 시간이었다. 다른 하나는 대자연의 웅장함 앞에 일 점 일 획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미미한 나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대오각성의 시간이었다.

여행은 세상에서 받은 여러 명함을 내려놓고 오롯이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차들이 뒤엉킨 행렬 사이로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인 공자(孔子) 상이 도심 가운데 우뚝하다. 어질면서도(仁) 도덕과 사랑하는 마음을 중요시했던 공자 때문일까. 행인들의 면면에 드리운 미소들이 수줍은 듯 해맑다.

인생은 자기 기준과 시점으로 해석하는 오독(誤讀)의 역사이다. 산촌민들이 바라보는 우리와 우리가 보는 산촌민들 어쩌면 그들의 눈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품처럼 살아가는 우리가 직립(直立)이 덜 된 야만인으로도 보일 것이다.

`여행은 실로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자신이 세상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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