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6.10.11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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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조한필 부국장(내포)

지난 토요일 부여를 찾은 건 순전히 유홍준 교수(67) 때문이었다. 그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고 그의 기증 유물전을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열 번 이상 가본 부여를 또 갔다.

충남문화재단은 충남의 문화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올해 `이제는 금강이다' 탐방시리즈를 기획했다. 금강이 닿는 금산, 부여, 공주, 논산, 서천이 특색있는 당일 프로그램을 각각 내놨다. 그중 부여 코스는 유 교수의 부여문화원 특강으로 시작됐다.

문화재청장(2004년 9월~2008년 2월)을 지낸 유 교수는 알다시피 10년전 부여 외산면 반교리에 정착해 주말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서울사람인 그가 이젠 부여사람이 돼 탐방객들을 맞고 있는 것이다.

“부여가 쓸쓸한 이유가 뭔지 아세요? 정림사를 복원하지 안아서 그런 것입니다. 내가 문화재청장일 때 그걸 못 이룬 것이 가장 후회됩니다. 당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제 부여와 충청도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 기를 꺾어 정림사를 복원해야 합니다.”

이렇게 선동(?) 발언을 하는데도 탐방객들이 손뼉을 치지 않자 “충청도 사람들, 또 이렇게 맨숭맨숭 앉아 있네!”라며 박수를 유도했다.

유 교수가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은 독특하고 또 설득력이 강하다.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왔을 때 크게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유적 해설서를 쓸 수 있을까. 사학과 출신으로 지금껏 많은 유적답사를 다녔지만 이렇게 콕콕 찍어주며 짜릿함을 주는 답사 해설은 들은 적이 없다.

당시 경주 남산에 갔다가 유 교수의 책을 들고 이곳을 찾은 여대생들을 보며 놀랐다. 이 한 권의 책이 온 국민을 답사 열풍에 몰아넣은 것이다. 그는 글도 맛깔스럽지만 입담도 수준급이다.

그가 정림사탑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진발이 안 받는 탑이야. 볼 땐 웅장한데 사진을 찍어보면 그렇지 못해. 그렇지만 날씬하지. 정림사 탑이 늘씬한 30대 여인이라며 이와 비슷한 모양의 익산 왕궁리 탑은 40대 중반의 뚱뚱이 아줌마야.” 정림사 탑이 위로 올라갈수록 매끈한 비례감이 느껴지지만 왕궁리 탑은 밑에서부터 묵직한 걸 빗댄 말이다.

부여 능산리서 출토된 금동대향로 얘기로 넘어갔다. 많은 사람이 부여국립박물관에 오는 이유가 이 향로 때문이란 그의 말은 과언이 아니다. 이 향로는 백제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향로는 향을 피워야 장관이다. 향이 향로 뚜껑의 봉황과 신선이 사는 산속에서 피어오른다면 얼마나 멋있겠느냐. 박물관 향로 옆에 이것을 찍은 사진을 놓으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면서 유 교수는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한다”며 또 문화재청장 때 못한 걸 서운해 했다.

 `이제는 금강이다' 부여 코스가 조기에 정원(200명)을 채운 건 유 교수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갑자기 부여가 부러워졌다. 금동대향로와 백마강 뱃놀이만 관광객을 부르는 게 아니다. 이런 명사 한 명이 많은 사람을 부른다. 주최 측이 공주 코스는 시인 나태주, 논산에선 소설가 박범신을 내세운 까닭이다.

유 교수가 기증한 애장품도 훌륭한 부여 문화콘텐츠가 될 성싶다. 직접 붙인 설명이 살갑다. 1993년 6월 저명한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 교수가 보낸 우편엽서가 눈에 들어왔다. `화제의 명저(나의 문화유적답사기)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병 중이라 엽서로 실례합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근래의 수작입니다.' 김 교수는 5개월 후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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