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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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꿈처럼
정 상 옥 <수필가>

정원의 목련 나무의 잎새 하나가 세찬 바람을 맞고 뚝 떨어진다. 가지 끝을 스치며 떨어지던 잎새는 불어오는 바람결에 휩쓸려 마당 한쪽으로 저만큼 날아갔다. 옷을 벗은 목련은 앙상한 나목으로 남겨졌다.

잎새를 다 떨구어낸 목련이 애처롭고 쓸쓸해 보여 가까이 다가선 순간 나의 눈이 가당찮은 편견이었음을 알았다. 앙상한 목련은 어느새 가지 끝마다 보송보송 솜털 같은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시린 겨울이 아직은 저만큼 남아 있는데 꽃을 피우는 봄 맞을 채비를 묵묵히 해나가고 있었나보다.

추운 겨울바람 속에서 자연의 섭리를 받아드리며 제할 몫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의 당당함 앞에 서니 나약한 인간의 심성은 이내 고개가 숙여진다.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속단해 버리는 외곬수 적이며 지혜롭지 못한 눈과 성숙되지 않은 인간의 알량한 동정이 그 순간 얼마나 하잘것 없고 무색해졌던지.

언제부터였던가. 한쪽으로 치우쳐 비뚤어진 눈대중은 마음속에서 옹이가 되어 박혔고, 한 번 자리한 고집은 아집이 되어 이내 되돌릴 줄을 몰랐다.

인생여정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의 고리를 맺으면서 편파적인 속단을 습관처럼 거듭해 왔다. 내가 정한 눈높이에 기준 점을 맞추고 타인을 평가하며 타협할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었는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외곬수적인 사고는 세상을 살아가는 내 삶 속에서 희망을 주기보다 실망과 허무만을 더 많이 남겼다.

서로에게 믿음이 깨질 때 오는 배신감은 미움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좋은 사람들과 신의를 깨버리는 서글픈 결과를 낳기도 했다. 세월이 얼마쯤 지나서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그런 나의 속된 판단력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고 답답한 아집이었는지 부끄러워질 때가 참으로 많다.

정이 마르고 무미건조해버린 인생사에 잘못된 인연만을 탓하면서도 비뚤어진 내 마음속의 시각을 바로잡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몇 계절을 더 맞고 보내야만 털어낼 수 있을는지.

자연의 순환 속에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는 나무처럼 인간사 또한 화사한 봄날도 있지만 삶의 여정에서 거센 비바람과 눈보라 몰아치는 시련의 겨울을 만나기도 한다.

신께서는 인간에게 시련을 주실 때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주신다 했다. 한여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내리는 것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기위한 시작이고 절망은 희망을 향한 첫걸음이라 했던가. 내일은 좀더 나은 안식과 평안히 있으리라는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처럼 인생길 굽이굽이 지날 때마다 부딪치는 고뇌와 시련을 두려워하며 좌절하지 않으리.

목련은 거센 바람결에 잎을 떨구고 가지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봄이 온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기에 고난을 참아낼 수 있으리라. 비록 나목이 되어 홀로 남겨졌지만 돌아올 새봄에 우아하고 화사한 꽃을 피울 꿈을 키우고 있기에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으리.

흐르는 세월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드리며 제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의 삶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은 편견 어린 내 눈의 잘못된 척도였음을 다시금 자책했다.

올 한해를 보내며 그동안 내 일상생활 중 스치고 지나간 고뇌가 시련의 겨울을 견디며 봄을 꿈꾸는 겨울나무처럼 보다 성숙된 삶으로 가기 위한 초석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봄이 오면 정원에서 가장 먼저 탐스런 꽃을 피어내는 목련의 우아하고 고고한 자태를 마음속에 그려보면서 나에게도 새롭게 다가오는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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