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와 소나무
기차와 소나무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6.10.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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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광역시 대전이 대전으로 불리기 시작된 것은 1905년 일이다.

일제가 경부선을 만들면서 `한밭'마을을 통과지점으로 삼으면서 비로소 대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어 1910년 한일 강제합병 이후 한밭을 기점으로 호남선 철도공사를 시작해 1913년 완공하면서 대전은 일약 교통의 요충지가 됨으로써 지금 인구 150만명이 넘는 거대도시의 틀을 잡았다.

그런 교통의 요충지로 당시 청주가 거론되었으나 지역의 거센 반대로 무산되고, 청주의 철길은 조치원에서 시작되면서 그만큼 지역 발전이 더뎌졌다는 일화는 여전히 인구에 회자된다.

진화된 철도인 KTX를 둘러싸고 충북이 술렁거리고 있다.

오송역이 있는데도 세종역을 신설하겠다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반발이 확산하면서 쓸데없는 지역 간 갈등과 더불어 힘의 낭비가 빚어지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제에 의해 경부선 철길이 부설될 당시 최남선은 `철도'라는 신문명의 도구가 지닌 이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의도로 창가를 만들었다.

<경부철도가>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문명개화의 시대적 필연성을 노골적으로 강조했는데, 거기에는 서구문명의 충격을 수용해야 하는 불가피한 당위성에 대한 친절한 설득(?)도 스며들어 있다.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같은 형세니/ 날개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우리네와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 친소(親疎) 다 같이 익히 지내니/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루었네'로 시작되는 총 67절의 이 노래는 7.5조 창가의 효시라는 문학사적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 노래에 숨겨진 속뜻을 헤아리면 작금의 KTX 오송역과 세종역 신설에 따른 논란과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있다.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라는 과장된 표현은 행정중심 신도시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욕심과 닮았고, `우리네와 외국인 같이 탔으나'에 이르면 충북(청주)과 세종시의 오월동주(吳越同舟)를 연상하게 한다. <경부철도가>의 외국인을 일본 제국주의로 상정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게다가 `조그마한 딴 세상'을 꿈꾸는 대목은 옛날 완행열차의 간이역에 대한 쇠잔함이 떠오르면서 빠름의 욕망에 대한 모순을 읽어 낼 수도 있겠다.

오송의 지명에 대한 유래에는 글자 그대로 다섯 소나무와 조치원 지명의 유래가 된 최치원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다. 역사는 이렇게 서로 통하며 흐르는데 KTX기차역을 둘러싼 인간 집단의 욕심은 빠름으로 상징되는 신문명의 좋은 기능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 요지부동이다.

이규석이 부른 노래 <기차와 소나무>는 가사가 애잔하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기차가 지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남겨진 이야기만 뒹구는 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낮은 귀를 열고서 살며시 턱을 고인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야기는 산이 되고/ 우리들에게 버려진 추억은 나무되어/ 기적 소리 없는 아침이면 마주하고 노랠 부르네/ 마주 보고 노래 부르네'

KTX가 완행열차로 전락할 수 없고, 호남선과의 분기역인 오송역이 간이역으로 쇠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춰둘 수는 더더욱 없다.

우리가 오송역을 위해 얼마나 한 맺힌 피 울음을 토했는지 벌써 잊었는가.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늘 푸르게 영원할 수 있도록 또다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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