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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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은아<증평도서관>
  • 승인 2016.10.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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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지난 여름은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절실했다.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은 틀 엄두도 못 내고 각자 저마다 무더위 이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커피전문점을 찾기도 하고, 도서관을 찾기도 하고 스릴러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무서운 이야기가 있는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책을 읽으면 그 순간은 더위가 가신다.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눈앞에 펼쳐지는 무서운 광경에 책장을 뒤로 넘기기가 무서워진다. 그럼에도 결말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 그런 책이 무더운 여름엔 제격이다.

나에게 있어 그런 책은 정유정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7년의 밤'이 그러했고, `28'이 그러했다. 더위가 찾아올 무렵 정유정 작가가 `종의 기원'이란 작품을 발표했다. 홍보 문구가 덥석 잡아 읽기에 왠지 주저하게 만들었다.

`종의 기원에서 마침내 최고의 `악인'을 만났다', `악(惡)은 어떻게 존재하고 점화되는가', `심연에서 건져 올린 인간 본성의 어두운 숲'이런 홍보 문구들에 압도되어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내 안에 숨겨진 이 악(惡)을 들킬까 무서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책도 못 고른 채 여름을 보냈다. 찬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한 가을날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 행사로 작가강연회를 계획하고 정유정 작가를 섭외했다. 작가강연회를 계획하면서 그 작가의 최신작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광경의 자세하고도 반복적인 설명에 책을 계속 덮게 만들었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그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피를 흘린 채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흰색 잠옷을 입은 엄마의 모습과 복도까지 이어진 피의 자국이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다.

그렇게 힘겹게 1부를 읽고서는 갈팡질팡한 마음으로 나머지 부분을 읽어내려갔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의 포식자를 아들로 둔 어머니의 마음과 그런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나 자신의 마음을 왔다갔다하면서 말이다. 작가는 이 책에 대해 “주인공 사이코패스의 변명 같은 책이다”고 말했다. 그러니 더욱 이해하고 싶었다. 주인공은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 중의 한 명일 것이다. 그래서 이해되어야 할 존재고 교화되어야 할 대상이지 않을까? 교화될 수 없다고 손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유정 작가의 책을 읽게 되면 책마다 기억에 남는 이미지가 있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화창한 바닷가가 생각나며 `내 심장을 쏴라'는 조그만 둔덕 위에서 행글라이더를 타고 환하게 미소 짓는 남자아이가 생각난다. `7년의 밤'은 뜬금없이 붉은 수수밭 한가운데 있는 우물이 생각난다. 벗겨진 군화 한 짝과 함께 바람에 흩날리는 수수밭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를 부르는 것 같은 이미지다.

우리 안에는 분명 악이 존재한다. 100% 선한 존재로만 살 수도 없고 그리 살아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악이 발현됐을 때에 도덕적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더 이상의 악한 행동을 막아오는 것이다. 어쩌면 저렇게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뉴스가 자주 나오는 시대다. 작가의 말처럼 새로운 종이 나타난 걸까? 그런 인간의 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하는 걸까?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만을 던져놓았다. 나는 오늘도 그 답을 찾는다. 심장은 두근거리고 무섭지만 그럼에도 답은 있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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