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밀밭에서 만나는 소통
고흐의 밀밭에서 만나는 소통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6.10.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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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새벽. 고흐의 편지를 읽는다. 가을 편지를 받듯 서너 편씩 천천히. 고요한 어둠 속에 앉아 시를 음미하듯 행간에 담긴 마음 길을 따라 걷노라면 소박하고 진솔하면서도 때론 뜨겁고 절절한 그의 가슴 안으로 한없이 빠져든다. 미안함과 사랑이 담뿍 담긴 편지는 주로 물심양면으로 고흐를 지원했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글이다.

고흐는 아를 노란 집을 가난한 화가들의 공동아틀리에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어려움에 처했던 고갱을 초대해 공동생활을 시작하지만 예술에 대한 견해차이로 갈등을 겪는다. 고갱과 심하게 다툰 날 자신의 귀를 잘랐던 고흐는 끝 모를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다. 자연 속에 이젤을 펼치고 뿌리 깊은 고뇌를 화폭에 담고 싶어 했던 그는 `거창한 전시회보다는 소박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리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림을 통해 절실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 했던 그의 격렬한 고뇌를 떠올리며 <까마귀가 나는 밀밭> 속에 서 본다. 어두운 보랏빛 하늘 아래 강렬한 노란색 터치가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광활한 밀밭. 그 밀밭 사이를 어슬렁대는 바람 소리가 들릴 듯 뜨거움이 솟는다. 죽기 이틀 전 그린 그림이라기엔 역동적인 생명의 힘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어떤 법의학자는 고흐가 자살하려 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스스로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지만 심장에서 떨어진 곳에 쏘아 절명하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이는 삶을 향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며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격렬하게 소통하기를 원했다고 본다. 홀로 끊임없이 창작에 몰두하며 독창적인 자신의 세계를 완성했으나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죽어서 신화가 된 반 고흐. 지성과 감성, 따뜻한 인정 그리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졌던 그가 두루 소통하는 재주를 가졌다면 어떤 대작들을 남겼을까? 정신병에 걸리지 않고 조금 더 오래 살아 자신의 세계를 맘껏 펼칠 수 있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오늘날 미술시장에서 최고가 거래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림을 통해 전 세계인과 소통하는 영광을 남겼으니 꿈을 이루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면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존재다. 진정한 소통이 없이는 예술도 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불통의 길로 깊이 들어가는 듯하다. 첨단 기술의 발달이 혼자 놀기 익숙하게도 만들지만 최근 만들어진 `김영란법'은 애꿎은 데로 불똥이 튀고 있다. 공직자의 부패 비리를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 평범한 소통마저 위축시킨다. 개인 양심의 한계를 벗어나 부패 방지법까지 만들어가며 감시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동료 학생의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소식은 더욱 가슴 아프다. 캔커피 하나에 청탁이 통할 리도 없으려니와 사제간에 소소하게 오가던 정마저 의심대상이라니. 공무원 친구들과 통화 끝 입버릇처럼 내던 `밥 한번 먹자. 차 한잔해야지'라는 말도 조심스러워졌다. 애초부터 공직자들이 비리 없이도 소통 잘 되는 양심을 가졌다면 가슴 아픈 사건들도 없으려니와 이런 혼란도 없을 일이다. 아무튼 초기의 혼란을 잘 갈무리하여 `김영란법'이 잘 정착되길 바랄 뿐. 고흐처럼 진심으로 소박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안될 일이 뭐 있겠는가. 시월 들판은 고흐의 밀밭이 내려온 듯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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