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기
나의 성장기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6.10.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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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10월 4일 화요일 저녁, 수필교실 회원의 등단식이 있었다. 내게는 다른 의미에서 `나의 등단식'이기도 했다.

행사 소식을 듣고 계속 망설이기만 했다. 그야말로 1%의 용기가 부족하여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 계속되는 실수로 의기소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발령이 난 학교에서 교사 몇이 모여 플루트 레슨을 받았었다. 여럿 시작했는데 2개월 지나자 단둘이 남았다. 그런데 나는 함께 레슨받는 동료에 비해 뒤처졌고,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고 초등학교 때 배운 리코더가 전부라는 자격지심으로 스스로 번데기처럼 움츠러져 있었다. 레슨 때마다 진땀을 흘렸다. 한 해가 지나 학교를 옮기면서 그 짧은 고행이 끝났다.

그 경험이 내 삶의 후반부에서 아주 큰 의미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곤 당시 생각하지 못했었다. 3년 전 플루트 동아리에 합류했다. 첫 공연을 하던 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시야는 종이 한 장 만해졌다. 고개도 움직이지 못하고 사팔뜨기처럼 악보를 읽었다. 연주를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목이 뻣뻣하게 아팠다. 이후에 많은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항상 긴장되고, 실수 없이 완벽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최근에는 여러 무대에서 큰 실수를 연속했다. 잠을 자다가도 생각이 났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의 크기만 하게 입술이 부르텄다.

몇 주를 앓고 나니 조금 나아졌고 다행히 그때 수필교실 총무의 메시지가 왔다. 1%는 단숨에 충전되었다. 기꺼이 해보겠다고 했다. 당일 퇴근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우황청심환을 반 병 마시고 출발하였다. 연습할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하며 아쉬웠지만 이제 제법 편안해진 수필교실 문우들 앞이라면 조금 실수를 한다 해도 괜찮을 듯했다. 운전 중에도 한 음 한 음 박자를 계속 세었다.

그런데 행사는 출판사 관계자와 음성문인협회 회원들까지 참석한 제법 크고 격식 있는 자리였다. 당황스러웠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선뜻 나선 것이 후회스러웠다. 이쯤에서 못하겠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 수필 선생님께서도 진지하게 등단 축하 말씀을 해 주셨고 주인공도 긴장되었는지 엄청나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드디어 내 연주 순서가 됐다.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첫 곡은 유심초의 `사랑이여'였다. 작가로서 새로이 시작하는 삶에 대한 축복과 기대감을 전하고자 고른 것이었다. 역시 전문가다운 청아하고 감미로운 소리는 아니었지만, 2분 남짓한 연주를 무사히 마쳤다. 여기저기서 앙코르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특히 문우들의 응원이 보였다. 기꺼이 두 번째 곡을 시작했다.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였다. 문학인들의 순수한 감성을 믿어 고른 곳이었는데 역시 함께 리듬을 타며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절정에 이르러 고음을 힘차게 뿜고 비브라토까지 내며 분위기에 푹 빠져드는 자신을 느꼈다. 3분 정도의 긴 연주가 드디어 끝났다. 나는 기쁘게 활짝 웃으며 첫 독주를 해낸 자신을 소박하게 자축했다.

삶의 매 순간에 크고 작은 두려움이 연속한다. 1%의 용기를 채우는 순간들로 삶이 한 걸음씩 커간다. 하나의 시작은 성장의 씨앗이고, 이 씨앗의 싹은 다음 성장의 씨앗을 맺는다. 그저 매번 우리를 성장시키는 유일한 선택은 `해 볼게요'라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래야 가을의 풍요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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