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등인의 별
점등인의 별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6.10.0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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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늦은 밤, 혼자 길을 달린다.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길을 내며 간다. 왕복 4차선 도로에는 오직 내 차에서 내뿜는 호흡만이 세상을 채운다.

밝은 노란 빛으로 서로의 존재들을 들추어대며 달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양옆으로 나열해 서 있는 나무들만이 이따금 내 차의 소리에 놀란 듯 실눈을 뜨고 지켜보고는 이내 다시 잠속으로 빠져든다.

길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마을들도 동네를 환히 비추어 주던 가로등을 소등 하고는 깊은 잠속으로 들어 가 있다. 저 마을의 점등인도 지금쯤 꿈속을 여행하고 있겠지.

어린 왕자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던 다섯 번째의 별에는 점등인點燈人이 살고 있었다. 그 별은 너무도 작아 점등인과 가로등만이 있을 자리밖에 없었다.

점등인의 걸음으로 세 발짝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별. 그곳에서 점등인은 점등과 소등을 쉼 없이 하고 있다. 별은 1분에 한 번씩 돌아 1분 간격으로 가로등을 켜고 끄고를 반복했다. 점등인의 쉬고 싶다는 말에 어린 왕자는 답을 준다.

“아저씨의 별은 너무도 작아서 세 발짝이면 한 바퀴 돌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언제든지 해를 볼 수가 있게 천천히 걷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아저씨가 쉬고 싶을 때는 걷기만 하면 되는 거에요…그러면 아저씨가 원하는 대로 해가 얼마든지 오래갈 테니까요.

하지만 점등인은 어린왕자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명령이라 어쩔 수 없다고. 끔찍하지만 내 일이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점등인은 자신에게 주문과 최면을 걸은 채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 가고 있다.

어린왕자가 석양이 그토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 별임에도 스스로에게 차마 고백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다른 별에 사는 왕, 술꾼, 장사꾼에게는 점등인의 행동이 멸시받을 일이겠지만,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의 위한 일을 하는 점등인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점등인이 하는 일은 별 하나와 꽃 한 송이가 더 태어나고, 잠들게 하는 위대한 일이었으므로.

어린 왕자는 자신이 좋아했던 다섯 번째 별 ‘소혹성 329’가 지금 이곳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우리 주위에는 자신의 일을 천직이라 여기고 ‘책임’과 ‘임무’에 충실한 많은 소시민이 있다.

세상의 밤과 낮을 밝히는 경비원과 환경미화원,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가장이라는 이유로 무거운 어깨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 그 외에도 세상의 음지에서 고된 일도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가 이 시대의 소시민이며 점등인이다. 소시민이 행복한 사회가 진정 아름다운 사회일 것이다.

청맹과니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는 청맹과니가 너무도 많다.

국민을 보호하고 믿게 해야 할 일이 최우선임에도 자신의 권력과 사리사욕에만 눈이 멀어 소시민의 삶은 뒷전이니 이것이야말로 청맹과니가 아니고 무엇일까.

차는 어느새 한벌리 고개에 막 올라서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언덕배기 아래에 앉아 있는 마을을 내려다본 순간, 그곳엔 별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동네 집들을 따라 서 있는 가로등 위로 별들이 앉아 점등인을 위로하고 있는 듯하다. 참, 안온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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