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풀꽃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10.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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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행복을 노래하는 시인을 만났어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네요.
지금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고 여긴다네요.
반가워서 고맙고, 고마워서 기쁜 삶으로 가자네요.
사람을 살리는 시를 쓰라네요.
열복(熱福)만 찾지 말고, 청복(淸福)도 누리라네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라네요.
감동하며 살면 더 좋다네요.
입말로 시를 쓰면 쉽다네요.
욕 안 얻어먹고, 밥 안 얻어먹는 게 요즘 삶의 목표라네요.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뽑지 말고 그냥 놔 두라네요.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네요.
시인의 끝은 늙은 어린이라네요.
아이들을 속박하지 말라네요.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따라하라네요.
흐르는 물에서 물고기가 서 있으려면 흘러가지 않으려 계속 움직이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퇴보하지 않으려면 계속 공부를 하라네요.

“여러분은 모두 행복한 사람이에요. 부정하지 마세요.”

기죽지 말고 살라, 꽃 피우라, 말씀해 주신 나태주 시인이 참 고맙습니다.

‘풀꽃’이란 시로 널리 알려진 나태주 시인을 초청한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의 제4회 “충북도서관북페스티벌”에 갔다가, 그분 강연을 듣고 남겼던 소감입니다.

일전에 충남도 공주의 풀꽃문학관에 들른 적이 있긴 하지만, 아쉽게도 그때 시인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었죠. 마음 같아선 그분 풍금 소리에 맞추어 노래로도 만들어진 “풀꽃”을 함께 불러보고도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때엔 시절인연(時節因緣)까지 허락되지는 않았던 거죠.

아직까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풀꽃문학관의 소품으론 소리꾼 장사익이 시인에게 썼던 손 편지를 들고 싶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강연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짧고 쉬운 그분의 시편(詩篇)들처럼 강연 또한 별로 부담이 없으리라 짐작했다가, 그만 뒤통수를 단단히 맞은 셈이었던 겁니다.

정신이 번쩍번쩍 들기도 했고, 순간순간 눈물이 맺히기도 했었죠.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노년의 시인이 몸소 보여준 겸손의 풍미(風味)가 바다처럼 장대했답니다. 두 시간에 걸친 강연을 꼬박 선 채로 마치고 나서 이어진 저자 사인회에선 독자들이 들고 온 책마다 붓펜으로 정성껏 `풀꽃'시 전문(全文)을 써 주고, 꽃송이를 그려 넣어 주기도 했으니까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느끼게 해 주고, 남에게 꺼내놓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픈 일을 시로 옮겼던 숨겨진 일화까지도 들려주었던 나태주 시인은 아낌없이 주는 한 그루 나무 같았습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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